제목 | 이영근 신부님_“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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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8-04 | 조회수6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8/4일) : 연중 제 18 주일 * 제1독서 : 탈출 16, 2-4. 12-15 * 제2독서 : 에페 4, 17. 20-24 * 요한 6, 24-35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30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 <오늘의 강론> 연중 18주일입니다. 오늘 말씀 전례의 주제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입니다. <제1독서>는 이집트를 탈출해 홍해를 건너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 준 양식”인 메추라기 떼와 만나를 먹은 이야기이고,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으로 선포하시며, <제2 독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을 먹고, 옛 인간을 벗고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에 대해 말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로 많은 이들을 먹이신 후에 군중을 피하여 호수 건너편으로 오자, 그곳까지 몰려 온 군중의 세 가지 질문과 한 가지 청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군중의 질문은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요한 6, 25)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 6,26-27)
군중들은 이미 예수님을 만났고 빵을 배불리 먹었지만, 여전히 배고팠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현세적 음식에 매달릴 뿐, “참된 생명”인 표징을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하루를 사는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식을 “사람의 아들”이 줄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나오는 ‘양식’(브로시스)이란 단어는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요한 4, 34)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고 하느님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참된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두 번째> 군중의 질문은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8) 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8)
여기서, ‘일’(에르가)이란 단어는 ‘음식의 소화’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치 양식이 눈앞에 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입에 넣고 잘 씹어 삼켜야만 비로소 양식이 되듯, “하느님의 일”은 그분의 뜻을 우리가 실천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일”이 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일’은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여 우리 안에서 흡수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양식을 얻는 ‘하느님의 일’인 것입니다. 곧 ‘믿음’이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소화시켜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요한 6,27)으로 믿지 않는 이들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세 번째> 그들의 질문은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요한 6,30) 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이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요한 6,33)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니, 인간이 만든 빵이 아닙니다. 선물로 주어진 은총의 빵입니다. 그러나 이 빵은 더는 하늘에만 차려져 있는 빵이 아니라, 이미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 안에 우리 가운데 있는 빵입니다. 그러니, 이 빵은 하늘에 올라가서 먹게 되는 빵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먹어야 할 빵으로, 이 세상에서 하늘을 살게 하는 빵입니다. 곧 이 세상을 하늘로 만드는 빵입니다. 동시에, 이 빵을 먹는 사람도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 됩니다. 곧 자신을 세상에 빵으로 내어 주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살아 있게 됩니다. 마침내 군중은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요한 6,34)하고 간청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결코 굶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양식’으로 내어놓으십니다. 사실, 물질의 빵과 생명의 빵인 예수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질의 양식은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의 살과 피로 바뀝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의 생명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생명이 되게 합니다. 베네딕도 16세 교종께서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
주님! 부서져 먹히게 하소서! 부서져 먹히는 빵이 되고서야 양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혀 형제들 안에서 사라져버리게 하소서! 먹혀 사라지고서야 생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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