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받는 물음은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마태 16,13-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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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8-07 | 조회수5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받는 물음은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마태 16,13-23)
예수님의 ‘사람의 아들인 나를 두고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물음에,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이기지를 못할 것이다.”라고 이르셨다. 그런 다음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밝히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반박하였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르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 말씀의 속내는 ‘베드로야, 내 뒤로 물러가라.’라란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앞이 아닌 뒤’로 가서 ‘걸림돌이 아닌 반석이 되어라.’라는 거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반석이요, 걸림돌이라고 번갈아 돌려가며 비유하셨다. 반석은 그의 신앙고백 때문이었고, 하느님의 일보다 자신만을 생각했기에 걸림돌이라 하셨다. 그렇다. 우리도 걸림돌보다 반석이 되려면 오직 예수님 뒤에만 있어야 할 게다. 많은 이가 눈치도 없이 그분 뒤가 아닌 닥치는 대로 앞에 서려 막 설친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분께 크든 작든 취향에 따라 걸림돌이 될 게다. 사탄, 그것도 그 우두머리가 되려는 게, 어쩜 우리가 지닌 본성이 아닐까?
베드로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스승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 예수님에 대해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는 결정적 고백을 하였다. 이는 어디선가 떠도는 이야기나 누군가가 아무 생각 없이 알려 준 사실을 그저 반복하며 인정한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솟아난 진심 어린 고백이었으리라. 자신의 삶을 그분께 송두리째 바쳐야 함을, 미리 예감한 대답이었을 게다. 이처럼 자신의 순수한 신앙 고백은 오랜 침묵 끝에 나오는 ‘깨달음’의 언어이다. 신앙인에게는 이 깨달음과 자각의 과정이 미음의 성숙에 반드시 필요할 게다. 그러나 스스로 깨달아 발견하는 신앙 고백과 언어는 사실은 자기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자기보다 더 큰 진리의 빛이 이끄는 대로 주님께서 가슴속 깊이 들려주시는 소리를 듣는 이만이 발견할 수 있으리라. 창조주 주님 안에서 비로소 우리 자신의 본성인 참된 그 모습을 발견하기에 그러하리라. 우리는 정녕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증언할까? 혹 여럿 보는데서 신앙인의 가장 기본적인 십자성호도 제대로 긋지 않는 건 아닌지? 우리는 그분 믿고자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이 믿음을 보시고 그 위에 당신교회를 일구신다. 주님을 증언하고 고백하는 데에는 어떠한 조건이나 차별도 없어야 하리라. 오직 주님 향한 믿음만이 필요할 뿐일 터이니까. 믿음은 하느님 선물로 그분을 우리에게 알게 해 준다. 믿음은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과 맺는 관계이다. 이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일 게다. 그리고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그분께 순종하는 믿음은 교회와도 관계를 맺습니다.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고 그리스도께 다가가 그분께 순종하자. 그러기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라는 그분 물음에 “당신은 저의 주님, 저는 당신의 제자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의연히 응답해야 할 우리이다. 이런 응답에 예수님께서는 “그렇다면 너희는 어떤 삶을 살아야만 하겠느냐?”라고 우리에게 또 물어보시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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