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허무한 것들로는 영원한 것을 얻지 못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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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8-08 | 조회수4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마태 16,24ㄴ-28).”
1) 28절의 ‘여기에 서 있는 이들’은 ‘신자들과 사도들’입니다.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라는 말씀은, 표현만 보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살아 있는
동안에 나의 재림을 보게 될 것이다.”인데, 예수님께서
정말로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에 이천 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재림과 종말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서 있는 이들’은 시대와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앙인들’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에 연결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5-17).”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언제든지 때가 되면
재림과 종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날이 되면,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재림과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2) 28절의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앞의 10장에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마태 10,23ㄴㄷ).”
이 말씀에서 ‘너희’는 ‘사도들’이고,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는 “이스라엘 민족 모두에게 다 복음을
선포하기도 전에”이고,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는
“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다.”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도 겉으로 보이는 표현 그대로 생각해도
되는 말씀은 아니고, 재림에 관한 말씀들을 바탕으로 해서
해석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교회’로,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는 “온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되면”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 말씀은, 재림과 종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고 말씀이기도 하고,
박해를 받더라도 곧 재림이 이루어지고 예수님의 승리가
이루어지니까 참고 견디라는 격려 말씀이기도 합니다.
3)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을 고비를 겪은 사람들이 많고,
죽음의 고통을 생생하게 경험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부활신앙이 있어서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더라도
죽음의 과정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또 그게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경험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고통과 무서움을 생각한다면,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재림과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든 살아 있는 채로 재림과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해서
맞이하는 사람들보다는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재림과 종말의 날은 곧
‘최후의 심판 날’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4) 예수님께서는 ‘심판’에 대해서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부 사이비 종파에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믿기만 하는 것으로는
소용이 없고, 믿음을 ‘삶으로’ 실천해야만 믿음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마태 7,21), 심판은 ‘행실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그 ‘행실’은 ‘지금의’ 행실입니다.
“전에는 나도 신앙생활을 잘했었다.” 라는 말이나,
“나중에 잘하겠다.” 라는 말은 아무 의미 없는 말입니다.
지금 잘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심판결과’는 사실상 각자 자기 자신이
‘지금’ 결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심판은 지극히 공정한 심판이기 때문에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항의할 일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5) 26절의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라는 말씀은, “온 세상을 얻어도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라는 뜻입니다.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은, 그것들을 아무리 많이 얻어도,
그것들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세속의 재산이나 권력이나 명예 같은 것들...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것’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 희망, 사랑 실천 등으로만.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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