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매일미사/2024년8월13일화요일[(녹)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 |||
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8-13 | 조회수150 | 추천수1 | 반대(0) |
신문사에 있을 때입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일은 구독자를 늘리는 거였습니다.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서 본당을 찾아가서 홍보하였습니다. 홍보하면서 교우들에게 창세기의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시려고 했을 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이렇게 청하였습니다. “하느님 저 도시에 선한 사람이 50명만 있어도 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50명만 있어도 벌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50명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점점 숫자를 줄여서 이야기 했습니다.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내려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10명을 봐서라도 벌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신문 구독자가 50명만 넘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였습니다. 정 어려우면 40명만 넘어도 좋겠다고 부탁하였습니다. 이렇게 신문 구독자가 있으면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실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우 분들은 저의 이야기를 듣고 기쁘게 구독신청을 하였고, 기부금도 내 주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유일한 가톨릭 신문이라고 하면서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5년 동안 팬데믹도 있었지만 그래도 임기를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후임 신부님이 10월에 신문홍보를 위해서 온다고 합니다. 저도 50명은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입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그런데 밀밭에 가라지가 자라듯이, 이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악’이 들어왔습니다. 교회는 그 악을 죄의 뿌리라고 합니다. 죄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하느님과 멀어지려고 하는 성향입니다. 죄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의 결과입니다. 자유의지는 두 가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문화, 문명, 예술이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쟁, 폭력, 야만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처럼 이 세상을 벌하지 않으시는 것은 선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돌아 올 수 있도록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살신성인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몰로카이의 다미안 신부님은 나병환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였고, 본인도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자신을 저격한 청년을 찾아가서 용서하였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선교하였습니다. 신부님의 삶을 기록한 ‘울지마 톤즈’는 씨앗이 되어 많은 학생이 사제의 길을 가도록 이끌었습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콜베 신부님은 죽어야 할 사람을 대신해서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를 ‘자비의 순교자’라 부르며 시성하였습니다. 신부님은 포로수용소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 희망을 전하였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셨고, 천국에서 빛나는 신앙이 별이 되셨습니다. 신부님은 이웃을 위해서 대신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콜베 신부님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욕망이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교만이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그런 열쇠로 세상의 문은 열 수 있겠지만 천국의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욕망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많은 생명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병들어 가는 지구에서는 인간 역시 병들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계획한 것들, 생각한 것들을 실천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