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마태 18,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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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8-13 | 조회수5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8/14일) :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꼴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 제1독서 : 에제 9, 1-7. 10, 18-22. * 마태 18, 15-20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 <오늘의 강론> 오늘 <복음>의 앞부분은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형제간의 교정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잘못한 형제를 어떻게 혹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고쳐주어야 하는가?” 하는 교정방법과 절차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것을 네 단계로 제시해 줍니다. <첫째>는 혼자 단독으로 하는 교정이여, <둘째>는 두세 사람이 함께 하는 교정이요, <셋째>는 교회를 통한 교정하는 것이요, <넷째>는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는 것을 통한 교정입니다. 이를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규칙> 23장~30장에서 이렇게 다룹니다. “우리 주님의 명령에 따라(마태 18,16-17), 그의 장로들이 한두 번 그를 남몰래 훈계할 것이다. 그래도 고치지 않거든 모든 이들 앞에서 공적으로 책벌할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해서도 고치지 않거든, 파문이 어떤 벌인지를 아는 경우에는 파문에 처할 것이요, 그렇지 못하고 둔한 자일 경우에는 육체의 벌에 처할 것이다.”(수도규칙 23,2-5)
<복음>이나 <베네딕도 규칙서>에서 다 같이 말씀하시는 것은 단지 잘못한 형제에 대한 형식적인 교정방법이나 절차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사랑’과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곧 서로를 형제요,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마음이요, 타인을 ‘남’이라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라는 사실에서 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교정’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이거나 처벌을 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형제적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 그가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그의 [규칙서](4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한 형제를 고쳐주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살인행위와 같다. 왜냐하면, 잘못한 형제는 마치 독 있는 뱀에 물린 상태와 같은데, 그 독을 빼내어주지 않고 그대로 나두는 것은 잔인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잘못한 형제의 ‘교정’이 지극한 형제적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의 불편을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적 사랑 때문에, 사랑으로 형제의 잘못을 꾸짖고 교정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형제를 꾸짖거나 교정할 때는 사랑이 아니면 차라리 말아야 할 일입니다. 오직 사랑과 신뢰, 그리고 하느님께 의탁해서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섯 번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네 번째>까지 이르게 되면, 자포자기 하거나 무관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가 잘못한 형제를 위해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사랑으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마태 18,19)입니다.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 풀릴 것이기 때문’(마태 18,18)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먼저 ‘마음을 모으는 일’이요, 다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로 청하는 일’입니다. 스스로가 해결사가 되려고 하지 말고, 아버지께 신뢰로 의탁하는 일입니다. 성 베네딕도도 [수도규칙]에서 “(잘못한 형제들에게) 사랑을 더 베풀 것이며, 또 모든 이는 그를 위해 기도할 것”(규칙서 27,4)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있는 공동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니,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마태 18,20) 그러니 결코 포기하거나 무관심하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혹 잘못한 내 형제에 대해서 포기하고 무관심하고 있지는 않는지? 혹 사랑이 없어서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마태 18,15)
주님!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형제의 잘못을 앞세우기에 앞서 그가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할 줄을 알게 하소서! 그의 잘못이 드러나거든 그에게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함을 알고 힘을 모아 사랑하게 하소서! 그를 돕는 길이 죄를 찾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데 있음을 알게 하소서. 제 사랑만으로는 안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이신 당신께 의탁할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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