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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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8-20 | 조회수6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 마태 19,23-30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말 그대로 ‘멘붕’에 빠집니다. 당시 유다인들의 사고방식에서 재물과 건강은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름으로써 받게 된 축복으로, 가난과 고통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 죄를 지어 받게 된 징벌로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재물을 많이 소유하게 된 부자가 정작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어렵다고 하시니 크게 당황하여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서로에게 물어보았던 겁니다.
그런 그들의 당황스러운 마음을 꿰뚫어보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구원이란 사람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특정 덕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갖추면 받게 되는, 즉 사람이 자기 능력을 이용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받아내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자유로이, 그리고 조건 없이 내어주시는 ‘선물’이지요. 그렇기에 지금 자기 처지가 부자든 가난한 이든, 의인이든 죄인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마음을 두고 애착하는 세상의 것들을 과감하게 끊어내고 하느님을 믿기로, 그분 뜻을 따르기로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누구나 구원을,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의 삶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겁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남김 없이 다 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극단적인 분이 아닙니다. 재물에 대한 집착을 끊으라는 것은 재물 자체를 다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재물보다 하느님을 더 귀하게 여기며 먼저 챙기라는, 다시 말해 하느님을 내 삶에서 최고로 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여기며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 것들을 바라봄으로써 그것들에 연연하며 목을 매는 종과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의 재물을 보면 그것을 얻는 과정에서 하느님 뜻에 맞는 선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또한 그 재물을 쓸 때에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에, 그분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일에 망설임 없이 기꺼이 쓸 수 있게 되지요.
그렇게 재물을 얻을 때에도 그리고 쓸 때에도 하느님 뜻에 맞게 잘 쓰면, 그것을 단지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쓸 때보다 훨씬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즉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 자신만을 위해, 세속적인 쾌락을 얻기 위해 쓸 때보다 백 배나 더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하느님 뜻을 충실히 따른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까지 덤으로 받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재물을 내어놓는 일, 즉 참된 봉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각자가 소유한 것을 내어놓되 무엇을 포기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해 포기했는가가 중요합니다. 내 인간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서 포기해야만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충만한 은총을 내 안에 가득 담고 그 기쁨을 제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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