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텅 빈 빈곤에서 알 찬 충만으로 / 연중 제20주간 화요일(마태 19,23-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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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8-20 | 조회수5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텅 빈 빈곤에서 알 찬 충만으로 / 연중 제20주간 화요일(마태 19,23-30) 알렉산더의 유언이다. “내가 죽게 되면 손을 관 밖으로 꺼내 주시오. 천하를 손에 쥐었던 자도 죽을 때에는 결국 빈손으로 간다는 걸 보이고자 하는 것이오.” 우리는 평생을 모았던 재물이나 쥐었던 권력을 놓고 간다. 그때에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건 너무도 평범한 진리이다. 허나 많은 이가 이를 잊고 산다. 아무리 움켜쥐어도 죽을 때에는 빈손으로 가지만, 그것을 남에게 내 주어 사랑의 흔적을 남기면, 그이는 영원토록 다른 이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게다.
예수님은 ‘무소유(無所有)’를 추구하란다. 소유는 어쩜 부의 축적이지만 영적 빈곤만을 가져오기에. 이렇게 욕심만을 가져오는 소유는 어쩜 ‘텅 빈 빈곤’만을 결국은 초래하게 되리라. 따라서 우리는 비우고 비우면서 그 공간에 우리 주님을 모시는 공간을 마련해야 할 게다. 거기를 그분께서는 은총으로 채우실 게다. 이게 정녕 ‘알 찬 충만’ 이리라. 사실 재물은 가질수록 욕심과 걱정만 는단다. 따라서 재물에 대한 탐욕과 집착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영적 빈곤’이기에. 영혼이 굶주려 주님의 힘을 받지 못해, 결국 후회 속에서 죽음을 맞으리라. 물론 재물이 다 나쁜 것은 결단코 아니다. 단지 세상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 세상일에 관심이 많으면, 그만큼 가까이 계셔야 할 하느님을 잊어버릴 위험이 많게 되니까. 그렇다고 부자들 모두가 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은 여러모로 보아 아닐 게다. 문제는 각자가 주님께로 받은 그 탈렌트나 재산을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그분 나라에 들어가는 척도가 될 게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이 어떤지를 가끔씩은 돌아보자. 썩어 없어질 하찮은 재물에 쌓여 ‘영적 빈곤’ 속에서는 주님을 모실 수는 없기에. 무소유는 가진 게 없는 걸 결코 말하지 않는다. 무소유는 그 가진 것을 비워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마저도 포기하는 걸 말한다. 덜어 내고 비우면서 주님 뒤만을 따른다면, 그분은 당신 은총으로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시리라. 이처럼 가진 게 많은 이가 부자가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누어 하늘 곳간에 덕을 많이 쌓는 이가 진정한 부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의 위험을 경계하라신다. 재물은 도움이 아니라 시기를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이니까. 재물에 매인 이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 재물을 멀리해 자유로운 이는 하늘 나라에 쉽게 들어가 주님 제자가 될 게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버렸다. 그러기에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생 문제를 돈이면 다 해결하고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우리들 못난 부자들에게는 어쩜 무서울 것이 없을게다. 이렇게 모든 것을 지상의 것들에만 둔다면 하느님 나라는커녕 하느님도 보이지 않으리라. 그래서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려울 수밖에. 우리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낫다는 진리를 명심하자. 그리하여 잠시 지나가는 것에만 휘말려, 영원한 것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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