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나마저 방치하는 가장 무서운 무관심 / 따뜻한 하루[468] | |||
---|---|---|---|---|
이전글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마르틴 루터는 말씀을 강조했는데 왜 성체를 떠났을까? | |||
다음글 | ■ 주님 곁에서만이 영원한 생명이 / 연중 제21주일 나해(요한 6,60ㄴ-69) | |||
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8-24 | 조회수6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현대에 이른바 '4무(無)' 병이 있습니다. 무목적, 무감동, 무책임 그리고 무관심입니다. 그중 제일 무서운 것은 아마도 무관심일 것입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위젤 박사는 현대사회를 황폐케 하는 최고의 악이 바로 무관심이랍니다. 온라인에서 몇몇은 모르는 이가 길에 쓰러져 힘든 상황이더라도 모른 척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도 이후 성 추행범, 가해자로 몰려 고초를 치를 수 있답니다. 하지만 이는 나를 위하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으로, 결국은 나를 방치하는 무관심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닌 무관심입니다. 아름다움의 반대도 추함이 아닌 무관심입니다. 생전에 호화 생활을 누린 부자의 무관심에서 그의 사후 모습을 봅니다(루카 16,19-23). ‘어떤 부자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그것만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 집 대문 앞에는 개들까지 와 라자로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거지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는데,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안겨있는, 그 거지가 보였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본질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비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빼기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오직 어떻게 성공할지만 고민할 뿐, 하느님 뜻인 사랑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이름조차 모르는 부자의 무관심 말로를 라자로를 통해 보여줍니다. 그가 자기 집 대문에 버려진, 라자로의 개들이 핥는 그 종기와 배고픔에 관심을 두었다면, 아마포 옷 입은 그 역시 천사들 인도로 라자로처럼, 아브라함 할아버지 품에 안겼을 겁니다. 이처럼 나만 알고 나를 위하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은 나를 방치하는 무관심인 겁니다. 감사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