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그리고 눈먼 자들아!” (23,16.17)
예전 교황님께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셨을 때도 그랬지만 언제 어디서나 늘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인자한 미소와 단순한 몸짓 그리고 따뜻한 말씀은 교회 안에 사목과 봉사 직분에 임명된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에게 참으로 엄청난 도전이고 단호한 초대라고 봅니다. 형식과 관습에 깊이 베여 있는 비복음적이며 세속적인 권위를 내려놓은 교황님의 존재와 행위는 교회를 그 내부에서부터 변화시키는 새로운 기운과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봅니다. 교황님의 말씀과 행위는 당신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영적 나비효과’를 교회 안에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는 분명 성령께서 교황님과 함께 하심이며, 하느님의 뜻이 교황님을 통해서 드러났다고 봅니다. 무릇 교회 안의 사목과 봉사 직분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은 그러기에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만이 ‘위선자와 눈먼 인도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20,26~28)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들아!”(23,15)라고 부르면서 그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반복해서 하십니다. 그들을 위선자라고 호칭하는 그 표현 안에 예수님의 깊은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봅니다. 위선자라는 말은 흔히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말합니다. 즉 겉으로는 양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늑대가 들어 있는 그러한 사람을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착하고 훌륭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검은 욕심과 이기심의 덩어리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또한 위선자는 선행의 동기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칭송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하는 것이며, 자신이 원하는 어떤 이익과 보상을 얻기 위해서 말이나 행동을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너는 위선자야! 라고 호칭하는 까닭은 그 사람의 의도가 자기기만뿐만 아니라 타인을 기만하는 것이기에, 그 사람으로 인해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피해와 상처를 방지하기 위한 경고라고 보입니다. 다만 오늘 복음에서 그 대상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지요. 왜 예수님은 그토록 강경하게 그들을 향해 불행하다고 선포하셨을까요?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모세의 가르침인 율법을 해석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릇되게 율법을 해석하고 사람들을 가르친다면, 그들로 말미암아 하느님 나라의 문을 닫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며(23,13참조), 아울러 그들의 잘못된 인도 때문에 선량한 이들을 그들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23,15참조) 이처럼 지도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 지도자들 역시 심각하게 고려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어서 나오는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 그들의 그릇된 궤변적인 해석과 가르침을 세 번째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특별히 이 부분에서 예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23,16.17)라고 불렀습니다. 이미 예수께서는 조상들의 전통에만 사로잡혀 형식적인 종교 생활로 인도하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눈먼 인도자라고 명명하셨습니다.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렁이에 빠질 것이다.”(15,24)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대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참된 인도자란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하십니다. 흔히 인도자는 ‘길을 발견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도자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자신의 길을 알아야 하고,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길을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인도자가 자신이 가는 길을 모른다면,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거짓된 길로 이끌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을 어떻게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인도자들이 눈이 멀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은 모두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겪게 될 것을 심히 안타까웠던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에서 인도자(=스승, 아버지, 선생)로 선택된 교회 내의 모든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막중한 영적 책무를 깊이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영적 인도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막중한 책임 의식, 사명 의식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봅니다. 세상에서 참된 길을 찾고 있는 양들에게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는 진리와 생명의 길인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선 먼저 그 길을 걸어야 하고 그 길로 나아감에 있어서 야기되는 위험과 장애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참된 열린 눈과 마음을 갖추어야 합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요10,27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