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새로움의 시작 / 따뜻한 하루[46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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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8-25 | 조회수8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태아는 엄마 배의 춥지도 뜨겁지도 않은 알맞은 온도에서, 생의 가장 평온한 시간을 보냅니다. 게다가 탯줄을 통해 알맞게 영양분을 공급받기에, 먹을 걱정마저 하며 보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태아는 포근히 떠 있는 그곳에서 오래오래 살기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는 그렇지 않아서, 열 달이 채워지면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드디어 그 시간이 되면 태아는 엄마와 죽을 각오를 하고 온 힘을 다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태아가 아기가 되려고 세상에 나오면서, 폐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을 '산도'라 합니다. 여기를 통해 태아가 나오며 그 좁은 공간을 벗어나면서, 태아의 폐는 크게 부푸는 순간, 코나 입을 통해 거기로 처음으로 엄마의 양수가 아닌, 대기 중의 공기가 들어갑니다. 아기는 폐에 들어온 공기에 놀라 그걸 뱉어내려는데, 이때 '응애'하며 첫울음 터뜨립니다. 그렇게 모든 게 낯선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이번에는 영양공급원인 탯줄마저 끊겨버립니다. 뱃속서 누린 평안이 사라져 죽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더 넓고 새 세계가 열린 겁니다.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에, '태어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한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면, 스스로 안락하게 만들어진 생각과 고집을 깨트려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밤에 찾아온 최고의회의원 니코데모에게 이르십니다(요한 3,5).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 새로움의 시작은 언제나 지금껏 이어온 것에 대한 대단한 파괴로부터 그 출발이 시작됩니다. ‘응애’하며 울음을 터뜨린 신생아기는 엄마의 양수의 터짐으로 넓은 새 세계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에서 난 이가 영으로 가려면,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야한다고 이르십니다. 이처럼 새로움의 미지의 세계는 오랜 기간의 준비와 각고의 노력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생의 삶을 누릴 우리도, 지금 변화할 준비가 되었는가를 자문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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