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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불행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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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26 조회수154 추천수8 반대(0) 신고

 

“너희 위선자들아!”

 

 

오늘부터 3일간 복음은 마태복음 13장, 일곱 개의 불행선언을 다룹니다. 오늘은 그중 셋입니다. 한결같이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로 예수님의 격렬한 꾸짖음의 뒤를 잇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위선적 삶을 혐오하시는지, 위선적 무지의 삶이 얼마나 힘든 영적 불치병인지 깨닫습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의 삶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자기를 모르는 위선적 무지의 삶입니다. 

 

이는 비단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 공동체 모두에게 반면교사가 되는 보편적 현상임을 깨닫습니다. 앞서 마태복음 5장 산상설교 전반부, “행복하여라”라는 8개의 행복선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7개의 "불행하여라" 입니다. 역시 어제 강론에서 강조했다시피 우리는 “행복한 삶이냐 혹은 불행한 삶이냐?”선택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옛 현자의 말씀도 좋은 참고가 됩니다.

 

“내면과 외면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 한몸이니, 겉을 보면 속을 알수 있고 속을 보면 겉을 이해할 수 있다.”<다산>

“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면 거칠어지고,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겉치레가 된다. 겉모습과 바탕이 잘 어울리는 후에야 군자답다.”<논어>

 

참으로 안팎이 같은 진실하고 겸손한 삶이 참행복한 삶이겠습니다. 안팎이 다른 표리부동한, 위선적 무지의 삶이 아닙니다. 위선적 무지의 병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는 자기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면 알려줘도 모릅니다. 흡사 가면을 쓰고 가아假我를 진아眞我의 참나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같습니다. 가면없이 안팎이 같은 참나로 사는 사람들이 진정 지혜롭고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어제의 깨달음에 감사했습니다. 제 강론이 길다는 젊은 형제들의 개선 권고에 심히 불쾌했지만 참다가 후에 마음을 돌렸습니다. 강론을 쓰는 동안 주님께서 주신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내가 욕심을 버리고 젊은 형제들 조언에 따르는 것이 사랑이요 해결의 첩경이다 싶었습니다. 공동체의 주인공이자 희망이요 미래인 젊은이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구체적 작은 사랑의 실천이 중요하다 싶어 올리는 강론은 다소 길겠지만 아침에 미사때 하는 강론은 많이 줄이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해소였습니다. 내가 마음을 바꾸니 애당초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겸손히 진실을 받아들이니 모든 것이 감쪽같이 해소되어 기뻤습니다. 

 

이를 문제화했다면 미풍을 폭풍으로 바꾸는 어리석은 무지의 꼰대의 모습이 됐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고 이런 깨달음의 이해와 치유에 감사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매일 새벽 강론 쓰는 시간은 기도와 공부, 회개와 깨달음, 치유와 해소의 은총의 시간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로 시작되는 오늘 복음은 세 사례가 제시됩니다. 

 

첫째는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 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 하늘 나라 문을 가로막은 장애물이 된 이들입니다. 참 위선적 무지의 개탄스런 이들입니다만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둘째 불행선언의 경우는 개종자 한 사람이 생기면, 자기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들입니다. 앞서와 대동소이합니다. 위선적 무지의 삶을 보고 배우니 그렇게 될 수 뿐이 없겠습니다. 

 

셋째 불행선언의 경우는 분별의 지혜 결핍을 보여줍니다. 표리부동, 주객전도, 본말전도의 위선적 무지의 삶입니다. 이런 삶이 익숙해 마비되면 회개의 가능성은 요원해집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깨어 하느님 중심의 지혜롭고 겸손한 삶만이 해결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내 안에 있고 답은 하느님 중심의 겸손하고 진실하고 지혜로운 삶에 있음을 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주님을 닮아가는 겸손과 지혜의 사랑공부가 얼마나 절실한 평생공부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반면교사가 되는 복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오늘 독서에서 제시되는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교회를 통해 우리는 참교회, 참사람을 만납니다. 바오로의 인사말도 겸손과 은총이 넘칩니다. 복음의 불행선언의 대상자들과 너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바오로 일행과 테살로니카 신도들입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바오로 사도는 축복기도에 이어 이들의 믿음과 사랑의 성장을 자랑스러워하며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바오로가 신자들에게 목표로 제시하는 삶은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보여 준 인내와 믿음 때문에,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 여러분을 자랑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우리는 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당신 힘으로 완성해 주기를 빕니다.”

 

회개한 성인은 있어도 부패한 성인은 없습니다. 위선적 무지의 부패하고 병든 삶을 치유하는 하느님 중심의 기도와 회개와 감사의 겸손하고 지혜로운 삶이 참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날마다 바치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위선적 무지의 병을 치유해 참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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