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늘 자신을 성찰해 나가면서 / 성녀 모니카 기념일(마태 23,23-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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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8-26 | 조회수8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늘 자신을 성찰해 나가면서 / 성녀 모니카 기념일(마태 23,23-26)
그들은 율법의 외면은 잘 지켰지만 실제로 그 율법의 정신인 사랑은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또한 그 많은 계명을 지키는 데 집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일인 사랑 실천에는 소홀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단지 이웃이 자신들이 쳐 놓은 계명을 잘 지키는지만 늘 주시하며 따졌다. 아무리 제단을 잘 차리고 기도를 오랜 시간 한다 하여도,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될까? 따라서 우리도 계명에 집착보다는 ‘하느님의 참 뜻’을 파악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중적인 양면성을 지닌다. 이는 선하고 악한 게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일 게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다가도 미워하고, 질투하다가도 존경도 한다. 어쩜 위선도 이중성의 한 단면이리라.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때로는 위선보다 더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게 현대인의 아쉬운 단점이라면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것을 벗어나자. 어떤 이가 도끼를 잃어버렸는데 이웃집 애를 무척이나 의심했단다. 그는 평소보다 빨리 걷는 게 정말 그것을 훔친 것 같았다. 모든 동작이 ‘훔친 이’ 같았다나. 허지만 다음 날 평소 잘 다니던 골짜기 모퉁이에서 그 도끼를 찾았다. 그제야 바위 밑에 두었던 기억이 났다. 이튿날 그 애를 다시 만나니 전혀 훔친 이 같지 않았다. 중국 고전인 생각이 마음을 바꾼다는 예다. 좋은 생각은 마음을 밝게 하지만, 나쁜 생각은 마음을 더 어둡게만 할 게다. 예수님은 ‘겉모습보다 속마음’을 소중히 하라신다. 사는 게 복잡해질수록 이를 더 단순하게 가다듬어야만 하리라. 물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말없는 실천이 큰 감동을 준다는 걸 잊고 사는 게 다반사가 되었다. 벼는 많이 익을수록 고개를 더 숙인단다. 하느님의 본 모습을 저버린 이는 본인과 공동체마저도 불행하게 한다. 이렇게 우리가 그분께로 마음을 바꾸면 그 저버린 이가 가끔은 바로 자신이기에 수치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위선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살펴보면, 나 아닌 남이 아닌 바로 자신에게 다가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살다보면 왜곡된 욕망과 증오, 탐욕으로 차 있는 위선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리석고 딱하고 불쌍한 삶의 모습은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한 채 다른 것에 집착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외적으로 율법을 잘 지키는 행실은 올바른 마음과 일치해야만 할게다. 이처럼 마음의 회개와 내면적인 승리는 행실을 늘 더욱 좋게 만들어 준다. 사실 작은 일을 잘 지키려면 주님께서 주신 계명의 핵심을 무시할 수가 없다. 모든 이가 존경하는 의로움과 나약하고 비천한 이에게 지속적인 관심보이는 자비, 그리고 하느님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 계약의 근본 조항을 잊지 않아야만 한다. 무엇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하는지를 늘 성찰하여 그것을 얻고자 노력한다면, 불행을 안은 위선의 삶은 우리에게서 사라지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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