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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준수 신부님의 (8.28)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기념(연중 제21주간 수요일): 마태오 23, 27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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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27 조회수89 추천수2 반대(0) 신고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23, 27.29.)

휴가 때는 수도원에서 먹던 음식과 다른, 색다른 음식을 먹게 되지만, 사실 맛있는 음식도 한두 번 이면 충분하더군요. 그런데 며칠 동안 계속 외식만 하다 보면 질리는 것처럼, 지난 토요일 그리고 월요일, 화요일에 이어 오늘까지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책망하시는 내용을 듣다 보니 별 감흥이 없습니다. 사실 오늘 복음도 어제에 이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겉과 속이 다름으로 인한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행위를 질책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외적인 행위보다 내적 지향(=동기)을 더 강조하셨지요. 예를 들면, 진복 팔단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마태5,8)하는 말씀을 통해서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15,11)라는 말씀으로 강조하신 것은 사람의 안(=생각과 지향, 내적 동기)에서 나오는 것이 본인과 이웃과 세상을 오염시키는 요인이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정결 예식에서 중요한 것은 외적인 의식 즉 컵과 그릇은 닦는 것보다 먼저 잔 속(=마음)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겉(=외적 행동)과 속(=내적 동기)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기에 그런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회칠한 무덤이란,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골에 있는 무덤들을 사람들이 즉시 알아보고 우발적으로라도 무덤을 만지지 않도록 회를 발랐습니다. 왜냐하면 무덤에 닿게 되면 의식상 부정하게 되어 기도나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풍습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호칭한 한 까닭은, 회를 칠함으로써 무덤의 겉이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실상 그 속은 썩은 것으로 가득 차 있듯이, 그들도 겉으로는 의로운 사람같이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질책하신 것입니다. 

저는 모든 과일을 좋아하지만 어렸을 땐 이상하게 수박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제게 왜 수박을 좋아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면, 수박은 겉과 속이 달라서 싫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벳남에서 살면서 벳남 양성자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가장 싸고 흔한 게 수박이다 보니 그때부터 수박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나이 들어가면서 체질이 바뀐 까닭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체질적으로도 그랬지만, 아무튼 어렸을 때 겉과 속이 다른 수박을 저는 좋아하지 않았고, 그러기에 저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참사람이란 表裏不同표리부동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言行一致언행일치하는 사람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모습을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2테3, 7-10) 삶을 통한 가르침보다 더 강력한 모범은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동체 안에서는 자기 소임에 충실하지 않고 무질서(=게으르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만,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을 걸고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강하게 질타하였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말합니다. “우리의 선조들과 사도들이 그랬듯이 직접 손으로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진정한 수도사라 할 수 있다.” 라고. 그래서 성인은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시고,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 Ora et labora”는 모토 아래 일과 기도의 균형 잡힌 삶을 실천하셨습니다. 성인은 단지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우신 것만이 아니라, 노동이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위험성도 일찍부터 깨달으셨기에 노동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강조하였습니다. 곧, “그 어떤 것도 예배보다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하고 일갈하셨습니다. 결국 명상하는 삶은 노동하는 삶으로 인해 지탱되며, 다시 말해 인간의 모든 행위는 내적 성찰에 의해 심화된다, 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와 노동이 함께 있는 곳에서 비로소 인간은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의 핵심이며, 영성의 본질이다, 고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13세부터 조그만 공장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전 7시에서 오후 1시까지 일하고, 점심 식사 후 학교에 가서 저녁 8시까지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내 일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노동하면서 나는 인간의 노력에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 오늘도 제 손으로 벌어먹을 수 있도록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을 심어주셨으니 찬미하옵니다. 오늘도 제게 주어진 소임지에서 제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행함으로써 당신의 영광과 저의 구원을 위해 힘써 일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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