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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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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29 조회수64 추천수3 반대(0) 신고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마르 6,17-29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카페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앉아있는 엄마들을 종종 만납니다. 아이들은 유모차를 타고 있을 정도로 정말 어린 ‘아가’들인데 대부분 엄마의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영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들은 그 옆에서 이웃들과,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지요. 그러나 방금 말씀드린 상황에는 아주 큰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 글씨조차 읽지 못하는 어린 나이 때부터 영상매체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아기는 스스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글자를 읽지 못하는 ‘난독증’에 걸리거나 책을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됩니다. 책은 그것을 읽는 동안 구체적인 장면을 상상해야 하고, 사건의 정황과 주인공들의 심리를 생각해야 해서 머리가 피곤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상매체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상에 담긴 메시지를 비판이나 선택없이 수용하기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편안한 것만을 찾고 쉬운 길만 걸으려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상황 탓을 하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으로 하여금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들 핑계를 댈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자신입니다. 생각을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고 잘못된 점을 수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전혀 모르지 않았음에도, 그런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놓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는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약속이 초래할 후폭풍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지 않았습니다. 왕국의 절반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헤로디아에게 주어졌을 때 그녀가 그 권한을 이용해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할지 ‘모른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헤로데와 헤로디아 사이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눈엣가시 같은 ‘세례자 요한’을 제거하려고 시도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헤로데도 마음으로부터 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무 죄 없는 예언자를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그의 양심 때문에, 백성들 사이에 폭넓은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는 세례자 요한을 정당한 이유나 명분 없이 해치면 성난 군중들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뿐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세례자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의붓딸의 청원은 그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왕이라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왕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적당한 핑계 거리도 있었습니다. 헤로데는 그 기회와 핑계를 이용하여 자신이 마음 속으로 원했던 욕망을 실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그가 한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행동을 한 것은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은 것은 그도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저질러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 어떤 말로도 무죄한 의인을 살해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세례자요한의 피에 대한 죄값을 치러야하겠지요.

 

 우리 안에도 헤로데와 같은 마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가 그것입니다. 그것이 죄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초래할 결과가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조차 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그 말을 지키려고 하는 단호한 용기와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세례자 요한의 수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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