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결국은 깨어서 기다리는 수밖에 / 연중 제21주간 금요일(마태 25,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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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8-29 | 조회수4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결국은 깨어서 기다리는 수밖에 / 연중 제21주간 금요일(마태 25,1-13) 예나 지금이나 초미의 관심사인 ‘그 때’는 초지일관 ‘아무도 모른다.’이다.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라는 예수님의 이 단답형 답은 말 그대로 애매하고 답답하기 그지없기도 하다. 그분께서는 주님께서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오실 것이고,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신랑처럼 갑자기 들이닥치며 오신단다. 이게 어쩌면 거짓말 같은 정답일 게다. 그러니까 그때의 그 날짜를 안다고 말하는 이들은 정녕 모두가 예수님 가르침에서 벗어난 사이비나, 거짓말쟁이들이리라. 그 시간을 알고 있다면 날짜가 임박해 올 때에 준비도 할 수 있겠지만, 모르기에 지금부터 늘 준비를 해야만 한다. 주인이 언제 찾아와도 오로지 성실하게 일하는 종처럼, 신랑이 언제 도착해도 초조하게 등불을 켜 놓고 기다리는 신부처럼 지금 그렇게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만 할 게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심판의 그 날은 다름 아닌 바로 오늘이라고 단정 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심판 날이 언제이든지, 그 심판의 결과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달려 있기에. 사실 예수님 시대 팔레스티나에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혼식을 대개 밤에 신부의 집에서 올렸다. 신랑은 축하받으려고 먼 길로 친구들과 함께 신부 집으로 행렬한다. 그러니 신랑이 언제 도착할지가 어려웠을 게다. 그래서 신부는 자신의 방에서 기다리고, 대신 친구들이 마을 어귀에서 신랑과 그 일행을 맞이하는데 올 때까지 밤새 기다려야만 했으리라. 그러다가 신랑 친구가 다가와 “저기 신랑이 온다.”라고 외치면, 그제야 등불을 밝히고 나가 신랑을 영접하였단다. 이렇게 혼인은 온 동네잔치로 치렀다. 당연히 며칠 전부터 밤에 횃불 밝혀 춤과 노래로 축제를 벌인다. 결혼식은 주로 밤에 한다. 낮에는 사막의 열풍 땜에 어려웠기에 주로 바람 부는 밤을 택했다. 증인인 들러리는 대략 열 명쯤이었다. 그들은 깨어 있는 자세로 함께 신랑을 기다리는 공동체였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노력과 책임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들 준비에서, 세삼 확인이 되리라. 사실 신랑은 예수님을 뜻하고, 그분의 지체는 재림의 지연이다. 한밤중에 예상하지 못한 그분의 도착은 주님께서 오실 예견할 수 없는 시간을 나타내고, 신랑을 맞이하는 열 처녀는 주님을 기다리는 공동체이니까. 혼인 잔치에 들어가거나 거부당함은 심판의 판결을 나타낸다. 우리는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며 늘 깨어 준비할까? 사실 우리는 그분께서 다시 오시어 최후의 심판을 하신다고 굳게 믿는 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단순히 각자가 뿌린 작은 이 사랑이다. 물론 그 날 그 시각만큼은 아무도 모르기에 깨어 있어야만 한다. 그러기에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작은 이’ 사랑으로 깨어 기다리자. 그분께서 지금쯤 저만치 오시지 않는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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