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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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9-02 | 조회수59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24년 09월 02일 월요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루카 복음서에서는 오늘 복음의 단락이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부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루카 4,18) 전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만 따로 모으신 뒤 복음을 전하셨을까요? 그러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세리 자캐오나 니코데모,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같은 이들도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지 않았던 이들도, 종을 고쳐 달라고 청하였던 백인대장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전하여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신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그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에게,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행위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 구원을 간절히 바랐던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위들에서 생명을 얻었지만, 예수님 없이도 부족할 것 없다고 여기던 이들은 그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복음은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이었기에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들어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하느님 앞에서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요한 묵시록 3장 17절에서는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런 착각에 빠져 기쁜 소식에 귀를 막지 않도록 우리의 가난함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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