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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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9-04 | 조회수7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24년 09월 04일 수요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의 여러 문제를 알고 있었고 또 코린토 교회 신자들이 바오로 사도에게 물은 내용들도 있기 때문에, 코린토 1서와 2서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먼저 나오는 문제가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서간 뒷부분에서 성령의 은사나 전례에 대하여 말할 때도 공동체의 일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는, 코린토 신자들이 어떤 문제로 갈라졌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 이들은 바오로를 추종하거나 아폴로를 추종하고 있으니, 그들 나름대로는 교회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저마다 분명한 소신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오로와 아폴로는 하느님의 밭인 교회의 신자들을 돌보며 심고 물을 주는 일을 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무리도 어쩌면 교회라는 밭을 열심히 가꾸려고 하는 사람들이었겠지요. 그런데 바로 그 일이 그들을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사람들의 이름이 그들에게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사로잡히거나 쾌락에 몰두하여야 육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하느님이 아닌 인간에게 눈길이 머물러 있을 때, 인간의 업적만 생각하고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1코린 3,6)이심을 알아보지 못할 때, 쉽게 육적인 사람이 됩니다. 내 이름을 지우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임을 알아볼 때, 다른 모든 사람 안에서도 이를 알아볼 수 있을 때, “시기와 싸움”(3,3)이 사라지고 우리는 영적인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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