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1코린3,18-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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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9-04 | 조회수4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독서(1코린3,18-23) 18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19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20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을 아신다. 그것이 허황됨을 아신다.” 21ㄱ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 태양아래 모든 것은 구원에 가치 없는 헛되고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로 훌륭해 보이는 사람, 그 누구도 본 받자고 말하면 안 된다. 가르치면 안 된다.
21ㄴ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2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3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만 모든 것이 된다. 지혜, 진리가 된다.
(1코린1,22-23)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세상)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 창조의 그리스도께서(히브1,2) 피조물들의 죄로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시어 그들 대신 죽으시고 그들을 살려 내신다. 하느님처럼(창세3,5)의 자리에 앉은 사람(아담)들에게는 믿어지지도 않고, 오히려 어리석음으로 보인다.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죄를 지은 그 원수를 위해 대신 죽을 사람은 없다. 그래서 하느님처럼 훌륭해 보이더라도, 하느님처럼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을 본받자는 생각도, 가르치지도 말라는 것이다. 또한 자기 의로움을 위해 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의 '베드로를 본받자' 하는데 안 된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 밑이 아닌, 무릎 앞에 엎드렸기 때문이다. (무릎-‘베리코’로 복‘바라크’에서 나온 말이다.) 곧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해주신 그 예수님의 힘 앞에 자신을 바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러 가실 때 주님을 반박했던 것이다. 하느님의 흉내를 낼 뿐인 그 인간의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뱀의 간교한 지혜로 교만의 죄다.
(1코린1,24-25)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우리)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문 19절에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를 다시 생각해 보자. 다른 이들을 위해 버리고 죽는 십자가의 지혜가 아닌, 뱀의 간교한 지혜로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은, 말씀은, 그 간교한 꾀, 곧 하느님의 지혜 대신, 자신의 지혜로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사는 그 교만의 속셈, 꾀, 그 죄(罪)를 보게 하신다.(히브4,12) 즉, 내가 ‘척 하며~’ 감추어 두었던 죄를 나에게 들키게 하신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대신한 그 ‘꾀의 공든탑’을(창세11,3-4) 부수신다. 그렇게 나를 부수시어 잡으시고, 구원의 길로 이끄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고집하며 자신의 욕망의 길을 간다. 혹은 죄인으로 인정을 하기는 하지만 육신의 뜻, 욕망을 버리지 못해 따라 살아간다. *나 역시 내 뜻, 욕망대로 살고 있음을 자주 들킨다. 말씀을 좀 알고, 그리스도께서 내 죄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더럽고 추악한 죄에서 구원 받았음을 믿으면서도 말이다. 그 욕망의 나를 보면서 징글징글 하게 싫다. 괴롭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매달려 기도하고, 붙들고, 더 말씀 안에 머물렀다. 그리고 나의 추한 죄보다 하느님의 사랑이 더 크심을 깨달았다. 그래서 원수를 끝까지 사랑하신(로마5,10) 영원하신 그 이타의 사랑에 나를 내어 맏기며 산다. 곧 나를 신뢰하지 않는 나의 버림, 부인으로~
(루가18,13)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로마7,18-25) 18 사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19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20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선악)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 육신의 본질은 죄라는 것이다. 육신을 벗는 날, 완전하게 깨끗해 질 수 있음이다. 지금은, ‘오늘도, 내일도, 영원한’ 그 하느님의 법, ‘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피’로 거저 깨끗해 졌음을 믿는,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며 살기에 육신을 입고 사는 이 죄 많은 세상에서 미련이 없다. 그래서 내 갈 곳, 하느님과 함께 살 곳, 그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더 알고, 믿고’싶어, 하느님을 더 알고 싶어서 매일 말씀 안에 머문다. ‘무섭고, 엄하시고, 어려운 분’과 함께 사는 곳이 어떻게 천국이겠는가. 나를 끔찍히 사랑해 주시고, 내가 사랑하는 분, 그 님과 함께 사는 곳이 천국일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聖經)은 착하게, 의롭게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알라고 주신 것이다.(히브4.12 야고2,10)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 하시고 구원을 주시는 그‘피의 계약의 하느님’과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명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입고, 믿고, 곧 내 머리(생각, 지혜)를 죽이고 구원의 길이신 그리스도를 내 머리로, 그분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오라’고, 그것이 진리임을 알라고 주신 것, 성경이다.
(2티모3,15) 15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깨어있음’이 되어주시는 성령님! 지극히 높으신 분,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위해 낮아짐, 자기 버림, 부인의 삶으로 하늘의 안식, 생명이 현실이 되도록,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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