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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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9-05 | 조회수116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24년 09월 06일 금요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단식을 하여야 할까요, 하지 말아야 할까요?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는, 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입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루카 5,34) 문제는 지금 우리가 신랑과 함께 있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자주 단식을 하였던 것은 마지막 날의 심판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한은 심판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며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랑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미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고 메시아께서 여기 계시기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내일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도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6,5)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미 구원의 때가 된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단식할 때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도 가르치셨습니다(마태 6장 참조). 사도행전에서도 사람들은 단식합니다(13장 참조).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라는 종말론적 긴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과 다르다고, 단식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셨고, 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는 아직 완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신랑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요한만큼이나 열심히 그날을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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