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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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9-07 | 조회수89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루카 6,1-5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싸잡아 비난합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오?” 하루 종일 예수님을 수행하며 그분께 몰려드는 수많은 군중들을 상대하느라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제자들이, 마침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길에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밀 이삭 몇 개를 손으로 뜯어 비벼먹는 모습을 두고 옳지 않다고 지적한 것이지요. 물론 제자들이 한 행동 자체가 윤리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 볼 순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포함한 모든 법에는 ‘경중’이 있습니다. 즉 다른 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보다 중요한 법 규정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 바리사이들이 제자들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려면, ‘왜 남의 밭에 있는 밀 이삭을 함부로 따는 것이오?’라고 물었어야 했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면 안된다는 율법의 보조규정보다는 ‘도둑질을 하지 마라’라는 십계명의 제7계명이 더 큰 계명이며 그것을 어기는 죄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리사이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안식일 규정을 물고 늘어진 것은 신명기 법전에서 굶주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웃의 밭에 들어가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자비라는 원칙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주인이 베푼 그 자비를 악용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손으로 밀 이삭 몇 개를 잘라 먹는건 괜찮지만, 낫을 이용해 아예 ‘추수’를 해감으로써 주인에게 물질적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행동은 그런 허용 기준을 넘지 않았으므로 ‘죄’라고 할 수 없지요.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다른 기준을 적용하려고 듭니다. 제자들이 과한 욕심으로 밭 주인에게 피해를 입혔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먹은 행위가 안식일 규정에서 금지하는 ‘노동’에 해당하지 않는가라고 문제삼은 것이지요. 참으로 비열하고 치졸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편향된 시선으로 상황을 왜곡해서 보는 그들의 잘못된 시선을 바로잡으시기 위해 성소에 봉헌된 제사빵을 먹었던 다윗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성전의 성소에는 사람들이 봉헌한 열 두개의 빵이 접시에 놓인 채 보관되었는데, 이는 하느님께 바쳐진 거룩한 제물로서 봉헌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에 성소에서 봉사하는 사제들만이 자기들 몫으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그 일행이 그 빵을 먹은 것입니다. 그들이 너무나 굶주렸고 마땅히 내어줄 다른 빵이 없었기에 당시 성소를 지키던 아히멜렉 사제가 그 빵을 먹으라고 내어준 것이지요. 하지만 아무도 그 일을 두고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하느님께서도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봉헌에 관한 규정을 지키는 것보다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 그들을 살리는 일이 하느님 뜻에 부합되는 것이었기에 ‘융통성’을 발휘한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그런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돌판에 새겨진 최소한의 법을 글자 그대로만 지키려 드는 차가운 심장을 지닌 사람이 되지 말고, 하느님께서 자기 마음 안에 심어주신 공감과 연민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며 사랑과 자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계명의 내용 자체를 어겼는가 아닌가만 신경쓰지 말고 그 계명을 만든 주인이신 하느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며 따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계명을 어기지만 않으면 된다는 소극적인 마음으로 사는 이들은 계명을 어기는 다른 이들을 비난하고 단죄하느라 마음 속에 죄를 쌓지만, 계명의 근본정신인 사랑과 자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이들은 그 안에 담긴 하느님 사랑과 자비를 느끼며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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