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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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9-09 | 조회수251 | 추천수3 | 반대(0) |
판관기 9장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금을 세우려고 나무들이 길을 나섰다네.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고 올리브 나무에게 말하였네. 올리브 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들은 무화과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이 달콤한 것, 이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들은 포도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 주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가시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대답하였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 나쁜 지도자를 선택하면 피해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이솝우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때 연못에 사는 개구리들은 그들 자신을 다스릴 왕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우스에게 왕을 보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우스는 개구리들의 요청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통나무 하나를 던져 주었습니다. 통나무는 연못에 떨어져서 큰 소리를 냈고, 개구리들은 처음에 겁에 질려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통나무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개구리들은 그것이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구리들은 곧 통나무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너무나도 무기력하다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제우스에게 더 강력한 왕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번에는 제우스가 그들에게 황새를 왕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황새는 개구리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먹기 시작했고, 개구리들은 다시 제우스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제우스는 개구리들의 요청을 더 이상 들어주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나쁜 지도자를 선택하면 피해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의 역사에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 말기에 백성들은 ‘동학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동학은 잘못된 조정의 폭압과 폭정을 바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많은 백성은 동학의 사상에 매료되었습니다. 탐관오리와 부패한 관리들의 부정과 불의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당시 조선 정부가 동학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부패한 관리들을 엄벌하였다면 조선은 국정을 개혁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학의 기세에 눌린 조선 정부는 외세의 힘에 의존하였습니다. 청나라에 원병을 청하였고, 일본에 원병을 청하였습니다. 일본은 청나라와 패권 전쟁에서 이긴 후에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였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었습니다. 가시나무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를 삼켜버리듯이, 황새가 개구리를 잡아먹듯이, 일본은 조선을 삼켜버렸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의 현실도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있습니다. 우리가 단결하고, 힘을 키우지 않으면 또 다른 가시나무와 황새가 우리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사제와 율법 학자들에게 잡혔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군대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코스의 귀를 자른 베드로에게 칼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칼로는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홀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것만이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12명의 사도와 함께하셨습니다. 나의 신앙은 온전히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신앙은 참된 내가 하느님께로 향하는 여정입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겼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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