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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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9-09 | 조회수78 | 추천수4 | 반대(1) 신고 |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루카 6,6-11 “손을 뻗어라.”
오늘 복음에서는 ‘율법주의’의 어두운 면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안식일 규정을 글자 그대로 지키려는 이들이, 안식일 그 자체를 만드신 분과 대립하는 모습을 통해서입니다.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율법주의를 내세우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논리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창조사업을 마치신 다음인 일곱째 날 아무 것도 안하고 안식을 취하셨으니, 그 날을 기념하는 안식일에는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는 당신의 일을 쉬지 않으십니다.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는 그 일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 나아가 온 인류와 함께 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는 것이지요. 물론 그 일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그 일을 하는 날이 하필이면 안식일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정하시고 그 날에 사고 팔고 심고 짓고 하는 세상의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일 자체를 하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세상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신경써서 해야 할 더 중요하고 좋은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삶 곳곳에 숨어있는 하느님 사랑의 흔적들을 찾아보고 그분 사랑을 깊이 느끼며 내가 받은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찬미가 하느님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함으로써 우리가 구원받는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찬미는 그저 입으로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뜻을 헤아리며 적극적으로 그분께서 바라시는 사랑과 자비, 나눔과 선행을 실천해야 그것이 우리 영혼을 구원으로 이끄는 ‘좋은 일’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여기서 ‘합당하냐?’라는 질문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비추어 합당하냐?’, 그것이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이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신 의도는 단지 합당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데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좋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남을 해치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과 같고,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은 그의 목숨을 빼앗는 큰 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는 뜻인 겁니다. 이 중요한 근본원칙은 안식일을 포함한 모든 날에, 그 어떤 예외도 없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것이지요.
그 답이 너무도 자명한 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완고하게 버티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랑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면서도 ‘십계명을 어기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건 왜일까요? 나 혼자만 경건하고 엄숙하게 산다고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나 혼자 산다”가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라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소유, 내 생각을 지키기 위해 오그라든 손을 주님을 향해 믿음으로, 이웃을 향해 사랑과 자비로 쫙 펼쳐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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