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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루카 6, 27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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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11 조회수82 추천수4 반대(0) 신고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6,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하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수도 생활을 살아오면서 자비로운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마음에 조금씩 겹겹이 쌓여가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느님의 가장 아름다운 속성을 말하자면 자비로우신 하느님이라는 표현입니다. 

자비慈悲라는 단어에서 자慈는 다른 이에게 기쁨을 주고, 비悲는 다른 이의 슬픔을 덜어준다는 뜻을 내포한다고 합니다. 세상 안에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부처의 마음을 가리키는 불교의 핵심 덕목입니다. 성경에도 자비라는 표현은 신구약에선 무려 245번이 나올 만큼 빈번하게 나옵니다. 새로운 번역에서는 ‘자애慈愛’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는데 하느님의 사랑, 호의, 인자 등 복합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자비란 어원은 어머니 자궁을 의미하는 라하밈 rahamim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는 곧 자궁을 의미하며, 자궁은 모든 생명이 시작되는 곳이기에,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봅니다. 아무튼 하느님의 자비는 단지 측은히 여기는 마음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고통받고 있는 인간의 존재의 조건, 상황에 온전히 잠김이며 함께함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음에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취하시고 세상의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자비로운 존재가 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大慈大悲하시며 同體大悲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같은 자비를 강조하지만,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쨌든 그리스도교에서나 불교에서나 자비(=사랑)는 구원을 위한 최고의 실천 윤리이며, 구원을 얻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점은 두 종교 모두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리스도인이 “원수를 사랑하고,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속옷도 벗어주며, 달라는 사람에게 줄 수 있도록”(6,27~30) 자비로워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에게 이처럼 자비를 베푸셨고, 자비를 체험한 우리에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하고 가르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왜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잘해주고,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해야 할까요?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그리고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속옷도 벗어주어야 합니까?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내 것을 훔쳐 간 사람에게서 되찾으려 하지 말아야 할까요? 이 모든 것을 분석하기 시작하면 도저히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납득할 수도 없거니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한없이 크신 자비를 베푸신 예수님께서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그냥 단순하게 “너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자비를 실천할 때 자비로우신 하느님으로부터 “큰 상을 받을 것이고” 또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6,35)라고 축복하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자비 실천은 계산적인 주고받음의 차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먼저 자비를 베풀어 주셨듯이 우리 또한 아빠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으로 자비를 베푸는 데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아무리 해도 다 할 수 없는 것은 사랑의 의무라고 사도 바오로는 일깨워 주시며, 이런 자비의 실천이야말로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는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의 효성이며 효도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자비의 실천은 아빠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때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겠지만, 무한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믿기에, 우리의 자비 실천은 우리의 힘이나 소유를 나누는 것이 아닌 단지 아버지의 자비를 퍼서 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을 닮고,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살려는 우리에게 사도 바오로는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1콜3,12)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자비하신 아빠 하느님처럼 우리 또한 자비로운 존재와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자비로우신 당신을 닮아 저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 싶고 자비를 살고 싶으니 힘을 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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