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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주님의 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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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11-03 조회수33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12-14)”

1) 여기서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는, “친한 사람들만 부르지 마라.”이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는 짓은 하지 마라.”입니다.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라는 말씀은, “사랑을 실천할 때에는 보답을(대가를)

받기를 바라지 말고 그냥 해야 한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여라.”입니다.

“사랑에는 울타리가 없어야 한다.”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는,

“그들은 너에게 보답할 수 없겠지만, 하느님께서 보답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입니다.

2) 16장에 있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보면,

저승에 간 부자와 라자로 사이에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서 서로 건너가지 못한다는 말이 나옵니다(루카 16,26).

저승에 있는 그 큰 구렁은, 부자 자신이 이승에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큰 구렁은 인간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 사이의 ‘양극화’ 현상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라자로 쪽에서 생각하면 부자에게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고, 부자 쪽에서 보면, 라자로에게

다가갈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차가운 이기심입니다.

부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구렁, 또는 장벽을

만들어 놓고서 가난한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3)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의 부유한 신자들을

꾸짖은 일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제 내가 지시하려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이 이익이 아니라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러분이 교회 모임을 가질 때에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에 분파도

있어야 참된 이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1코린 11,17-22).”

그 당시에 ‘아가페 만찬’을 하려고 신자들이 모인 상황에서,

부자들이 자기들끼리만 먹고 마시고, 가난한 사람들은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 일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아가페 만찬, 즉 ‘사랑의 식사’를 하겠다고 모여서는

정말로 ‘사랑 없는’ 짓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무시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서러워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6-48).”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는 것은 ‘세리들(죄인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세리들이나 하는 짓’은, ‘죄를 짓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사랑처럼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라는 명령입니다.

친하지 않은 사람, 낯선 사람, 원수 같은 사람도

사랑하는 것이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5)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1-2).”

여기서 ‘손님’이라는 말은, ‘낯선 나그네’를 뜻하는 말입니다.

‘천사들’이라는 말은 ‘하느님’을 뜻합니다.

낯선 나그네들을 접대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을 접대한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창세 18장).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

다음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낯선 나그네’와 ‘가장 작은 이들’은 사실상 같은 말입니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사랑을 주어야 하는 사람은,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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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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