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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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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5-11-10 조회수51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5년 11월 10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산책하다가 귀여운 강아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어디에 있는 보이지 않았고,

강아지만 잔디밭 위에서 킁킁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이때 이 강아지는

어떻게 했을까요?

1) 최대한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2) 도망쳤다. 맞습니다.

2번, 도망쳤습니다. 만지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단지 그 귀여움을

사진에 담으려고만 했을 뿐인데도

도망쳤습니다. 그렇다면 도망쳤다고

제가 화를 내며 강아지를 쫓아갔을까요?

아닙니다. 도망치는 것은 동물의

본성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왜 도망치면 비겁하다고 말할까?’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보았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서일까요?

도망치면 ‘비겁하다, 못났다, 쓸데없다’

등의 부정적인 말이 쏟아집니다. 모든

동물의 본성은 도망치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역시 도망쳐도 본성에

맞춰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아닐까요?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본성 이상의 지위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성만을 유지하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로 가득 찬 상태로

들어갈 수 없어서 영혼이 정화되는 시간,

또 나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기에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본성을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도 우리 본성을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바로 남을 죄짓게 하는 것과 용서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죄짓게 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이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단호한 경고(‘불행하여라’)

를 하십니다. 특히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라고 하시지요. 이는 당시 유다

사회에서 가장 치욕적이고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또 용서도 그렇습니다.

한 번도 용서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4)라고

말씀하시지요.남을 죄짓게 하는

것과 용서 모두 우리가 실천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냥 본성을 따르면서,

남이 죄짓든 죄짓지 않든 상관없이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상태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에,

주님께 도움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루카 17,5)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만 있어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한 것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본성을 뛰어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오늘의 명언

삶이란 아주 미묘해서, 열리기만을

고대했던 문을 이미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다.

(브리아나 위스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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