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8월19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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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8-18 | 조회수3,162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8월 19일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독서묵상 길르앗 사람 입다가 이스라엘의 판관이 된 경위는 이러합니다. 암몬군의 위협을 받고 길르앗 사람들은 이방인 신들을 섬기던 자신들의 죄를 뉘우쳤답니다. 길르앗 사람들은 바알 신상들을 모두 없애고 하느님께 매달렸지요. 암몬 군이 길르앗에 쳐들어와 진을 치자, 길르앗 원로들은 암몬군을 물리친 사람들을 자기들의 수령으로 삼겠다고 선언합니다. 마침 길르앗에는 입다라고 하는 장사가 있었는데요. 그는 창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형제들과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비적 떼의 두목이 되었지요. 상황이 다급해지자 길르앗 원로들은 입다를 자신들의 수령이자 사령관으로 모시게 됩니다. 하지만 길르앗에 진을 친 암몬군의 수가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암몬군의 배후를 정찰한 후 입다는 하느님께 한 가지 서원을 드리게 되지요. 만약 암몬군을 입다 자신의 손에 부쳐 주신다면, 암몬군을 쳐부수고 돌아 갈 때 자기 집에서 마중 나오는 첫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겠다는 서원이었지요. 아뿔사! 승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제 자기를 마중 나온 사람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일 줄이야. 입다는 옷을 찢으며 통곡하였지만 이미 서원을 돌이킬 수 없었답니다. 하느님께 올린 서원은 결국 백성들 앞에서 올린 서원이었으니까요. 결국 입다의 자신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으로 해서, 평생 자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사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는데요. 입다가 조금만 더 영리하였더라면 하느님께서는 산사람을 번제물로 바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걸 알았겠지요. 오히려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올바르게 살게 되고 정의로워지는 걸 더 원하셨을테니까요. 아마 두 달 동안 친구들과 함께 산을 돌아다니면서 입다의 딸은 아버지의 어리석음과 우둔함을 슬퍼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처녀들은 아버지의 어리석은 서원에 희생당한 입다의 딸을 기억하며 슬퍼했을 것 같은데요.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해서 앞 뒤 가리지 않고 아무 맹세나 서슴치 않는 입다의 모습은 어쩜 우리들 모습의 한가지 단편이 아닐까요. 복음묵상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비유이야기로 해주셨는데요.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에는 두 그룹의 사람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사람들인데요. 예수님 비유 이야기의 특징은 인사이더의 사람들과 아웃사이더의 사람들의 운이 역전된다는데 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인 혼인잔치의 비유에서도 두 그룹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임금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과 초대를 기대하지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물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었겠지요. 하지만 이들은 혼인잔치의 초대에 응하지를 않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세상일에 너무 바빴고, 인생의 자기 속임수에 빠져 자기만을 위한 일에 정신을 빼앗겼기 때문이지요. 임금님은 초대받았지만 혼인잔치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버려둔 채, 거리에 나가서 아무 사람이나 데리고 와서 혼인잔치를 채우라고 명합니다. 이들은 임금님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 될 것을 감히 기대하지도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가난했고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었지요. 예수님은 이처럼 하느님 나라에는 초대를 기대하지 못한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음을 보았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들이 구원받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룹이 있는데요.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에서는 오히려 구원의 인사이더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초대를 거부하고 있고, 하느님 나라는 오히려 초대를 기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뜻밖에 놀라운 소식으로 하느님 나라에 초대되고, 그 나라에 들어가고 있었답니다. 후반부에 나오는 예복 이야기는 초기 교회가 덧붙인 해석인데요. 초기 교회는 다시 자신들을 구원의 인사이더로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정신을 다시 역전시켰다고나 할까요? 비유이야기처럼 하느님 나라의 초대는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항상 열려 있는데요.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를 어떻게 응하고 있을까요.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첫 번째 초대받은 사람들은 왜 혼인잔치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세상 일로 너무 바빴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투자한 주식의 등락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하고, 부동산 가격의 동향에 대해서도 알아보아야 하고, 혹은 진급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이런 저런 세상일에 마음이 빼앗겼기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 응할 시간이 없었답니다. 예수님, 혹시 우리들 사는 모습도 그런 건 아닐까요. 세상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려, 하느님 나라의 초대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말입니다. 혹시 저희들은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죽은 다음 천당에 들어가게 될거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 저희들이 당신의 비유 이야기를 생각하게 하여 주십시오.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초대를 깨닫지 못하면서 내세의 행복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요. 예수님, 저희들이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인생이 가져다주는 자기 속임수에 속아 살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무엇보다 작은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안에 감추어져 있는 행복과 사랑을 발견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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