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측은지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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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요셉 | 작성일2000-07-22 | 조회수2,645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연중제16주일 나해 마르코 6,30-34
분재한 나무나 온갖 치장을 한 애완견을 볼 때 저는 문득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데 굳이 그런 마음을 품는 것은 자연이 자연스럽 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답지 못할 때 그것은 아픔 이고 슬픔입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는 사단(四端)이 있어 이것이 확충됨으로써 인간이 더욱 인 간다워 질 수 있게 된다고 하였는데, 그가 사단 중에 처음 제시한 본성이 측은지 심(惻隱之心)이었습니다. 불쌍한 것을 보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즉 측은지심이 확충될수록 더욱 인간으 로서 완성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불쌍한 것을 보고도 측은지심이 들기 보다 더 냉정해지고 애써 외면하며 무덤덤한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잘 살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을 생각해 볼 때 그렇 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설령 그렇게 산다고 해도 그것이 내게 도덕적 자기만족 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懷疑)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휴가(?)를 가시다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 은히 여기시어' 휴가를 반납하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께 측은지심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마음 중에 측은지심이 얼마나 깊고 절절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바로 이 측은지심 때문에 성부께서는 당신 자신 보다 더 소중한 외아들에게 인성을 취하게 하시고 그분을 통해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으며 우리 안에 현존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이기심과 온갖 욕심에 질질 끌려 다니지 않고 측은지심에 따라 지혜롭게 사 랑의 길을 갈 수 있는 삶은 그만큼 자유롭고 평화로운 구원의 삶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사랑을 하려 한다면 힘만들고 돌아오는 것은 상처난 자기만족 정도일 것입니다. 맹자는 하느님의 모 상인 인간의 본성에서 사랑의 속성을 성찰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게 사랑의 길을 열어주셨으며 사랑을 실천할 자유와 힘을 부어 주시며 이끌어 주 십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마음으로 물드는 한 주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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