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진짜 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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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0-08-29 | 조회수2,336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나병환자 열 사람이 치유되었다.
그러나 그 중의 한 사람만이 감사를 드렸다.
나머지 아홉은 아니었다.
왜 일까?
진정으로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 삶은 참으로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 감사의 대상 하나 하나와 교감을 느끼며 살기 때문이다.
진짜 행복한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한결같이 매사에 감사하며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안되는 것일까?
오늘의 복음이 그 이유를 잘 말해 준다.
나는 마음으로는 치유받고 감사드리려 온 그 나병환자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나머지 아홉 속에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를 냉철하게 한번 생각해 보자.
아홉명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었고, 감사를 드린 한 사람은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겠다.
아홉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하느님의 자녀로서 치유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마치 햇빛이나 공기, 물의 소중함을 여기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듯이 말이다.
그러나 사마리아인 나병환자는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방인으로서 치유받을 그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는 치유받을 자격이 없는 몸인데 황공하옵게도 무상으로 치유받았던 것이다. 마치 사막에서 목이 타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이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그 물의 소중함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듯이...
그렇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생각하기 때문에 진정한 감사를 드리지 못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의 부모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리지 못하고 대충 감사드리지 않는가?
물이 소중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토록 감사드리지 않고 있음은 아직도 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하느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감사드려야 함은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 가난한 자로서 하느님의 무상의 은총 체험을 하지 못하고 당연히 하느님의 자녀로서, 신자로서, 수도자로서, 성직자로서 받아야 할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을 주셨고 지금도 주고 계시며 앞으로도 주실 그 하느님께 진정한 감사와 찬미를 드리지 못함이 아닐까?
나의 형제, 자매들에게,
나의 자식에게
나의 남편과 아내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감사드리지 못함도
내가 사랑하였기에 사랑받으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에 우리의 불행이 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은총이요 주님의 선물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서로 불평하기보다 늘 감사하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맺는 하느님과의 관계, 부모자식과의 관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 자연 사물들과의 관계... 이 모든관계들이 참된 끈끈한 의미를 회복하게 된다.
이제 세상은 감사 덩어리가 된다.
아, 이것을 왜 몰랐던가!
내가 당연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선물이 아닌가?
내 공로로서가 아니라 그저 무상으로 받은 것이 아닌가?
나는 이토록 선물들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죄와 악습에 늘 사로잡혀 있는 내 꼬라지를 생각한다면
나는 결코 이러한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하신 그분께서는
오늘도
나에게
직접 혹은 간접으로
무상의 선물을
가당찮게 베풀어 주신다.
이 어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으리오.
사마리아 출신의 나병환자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임을 잊지 말자.
그래야만 나는 늘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으리라.
아멘, 알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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