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의 신원을 찾아서...(연중3주일)
이전글 선지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  
다음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1-01-20 조회수2,731 추천수33 반대(0) 신고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 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께 쏠렸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묵상>

 

베들레헴에서 우여곡절 끝에 태어나셔서

나자렛에서 자라난 예수는 나름대로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는 자신이 도데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근 30이 다 되어서

그는 이 답을 찾아 유대광야에서 40일간 단식피정을 갖게된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

그리고 자신있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다가왔다!"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제자단을 형성하면서

기존의 랍비들처럼 스승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예수는 여전히 불분명한 것이 있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명쾌한 확신이 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여느날 처럼 늘 하던대로 나자렛에 있는 성당에 들어가서

랍비의 한 사람으로 말씀을 낭독하고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명오가 열리게 되었다.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바로 하느님께서 이사야가 예언한대로 메시아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나를 불러주셨고 또 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해졌다.

확실히 자신의 신원을 안 이상

이제는 무슨 고난이 닥친다 하더라도

마치 운명인양 그 신원을 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라 할지라도...

 

......

 

우리 각자도

나름대로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해 왔다.

그 결과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고

크리스챤이 되었고

혹자는 수도자가 되고 성직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하느님께서 이렇게 살아라라고 하는가부다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그러면서도 때론 심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기도 한다.

신앙에 대해 의구심이 들 때가 있는가 하면

믿었던 신자들이나 수도자 성직자에게서 실망하면서

교회자체에 대한 불신감이나

나의 사도직이나 영적생활 전반에 대해 자신감이 없게 되기도 한다.

신앙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수도생활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미사드리는 기계가 되어버리는 사제생활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문하기도 한다.

 

또 그러면서도

다시 이 생활을 영위하기도 한다.

 

자, 우리에게도 확실한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

나는 도데체 누구이며 어떻게 살도록 불림받았단 말인가?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나도 예수처럼 회의나 의구심 없이

나의 길을 굳세게 굳세게 걸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만 그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답은 <왕도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늘 하시던 대로> 나자렛 회당에 가셔서 말씀을 읽고 선포하던 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우리에게도 다른 묘수가 없다.

우리가 하고 있는대로 <일상에 충실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 일상가운데서

어느날 주님께서 우리의 신원을 명확하게 알려주실 날이 있을 것이라

희망하면서 하루하루 충실히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바로 일상이 <득도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다>

왕도는 없다. 원래부터 없었다.

 

오늘 하루의 삶에 충실하고 만족하자.

행복해 하자.

그분이 우리의 일상 안에서 길을 가르쳐주시길 기도하자.

 

아멘. 알렐루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