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왜 모함하는가?(연중 3주 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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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1-22 | 조회수1,975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2001, 1, 22 연중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마르코 3,22-30 (적수들이 모함하다)
그 때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은 예수가 베엘제불에게 사로잡혔다느니 또는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 낸다느니 하고 떠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러다 놓고 비유로 말씀하셨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 낼 수 있겠느냐? 한 나라가 갈라져 서로 싸우면 그 나라는 제대로 설 수 없다. 또 한 가정이 갈라져 서로 싸우면 그 가정도 버티어 나갈 수 없다. 만일 사탄의 나라가 내분으로 갈라진다면 그 나라는 지탱하지 못하고 망하게 될 것이다. 또 누가 힘센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털어 가려면 그는 먼저 그 힘센 사람을 묶어 놓아야 하지 않겠는냐? 그래야 그 집을 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든 입으로 어떤 욕설을 하든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그 죄는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를 더러운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비방했기 때문이다.
<묵상>
사람에 대한 악의에 찬 모함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한 모함입니다. "저 사람은 인간성이 나빠! 정신이 나갔어! 성격에 모가 났어! " 등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사람의 언행에 의심을 품고 불온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저 놈이 왠 일이지? 분명 흑심이 있을 거야. 두고 봐! 본색을 드러낼테니." 이런 것이 여기에 해당되겠죠.
그렇지만 이 두 가지 형태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 두 가지가 뒤섞여 상대방에게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모함인 이상, 모함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함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모함은 자신의 결함을 감추기 위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모함이 난무하고, 너무나도 자주 이러한 모함이 모함으로 그치지 않고 건전한 비판으로 둔갑하여 한 사람을 생매장시키기도 합니다.
왜 이처럼 이상스러운 현상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을까요?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이 올라가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남을 추하게 만들수록 자신이 깨끗해지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남을 깎아내린다고 자신이 저절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먹칠을 한다고 자신이 지금보다 더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어리석은 언행, 즉 터무니 없는 모함을 무수히 반복하는 까닭을 신앙의 눈으로 한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엄한 한 사람,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한 사람,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생활하는 한 사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터무니없는 모함이 난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에 입각하여 보자면 한 사람에 대한 근거없는 모함은 곧바로 그 사람을 빚어내신 성부 하느님과 그 사람을 이끄시는 성령께 대한 모함으로 연결됩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모함했을 때, 그것은 모함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함을 하는 내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보아야 합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그 죄는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진정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간 세상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이제 사람을 새롭게 보아야 합니다. 가까이 있는 이들이든 아니면 멀리 있는 이들, 아니 내 자신과 전혀 무관하게 느껴지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은 경쟁 상대가 아니라 함께 걸어가야 할 벗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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