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선입견을 버리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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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1-01-31 | 조회수1,993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황영조가 올림픽 마라톤 우승을 하고 금의환향하고 김대중 선생님(?)이 대통령이 되니 조그만 섬마을이 난리가 나고 고향에서 엄청난 대접들을 받는데 왜 예수님은 대접을 못받으시는 걸까?
세인들은 항상 세속적인 명예와 성공을 칭송하는가부다. 올림픽 우승, 대통령이 되는 것, 우리 마을에서 사법고시 합격자가 나오는 것 이러한 것에는 고향사람들이 수많은 플랭카드를 내걸고 칭송하고 환영하지 않는가! 이태리에 있을 때 그곳의 수많은 성지들을 방문하면서 성인이 나온 마을들이 그 성인 때문에 유명하였는데 그것도 그 성인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 대성당 등의 표현은 결국 세속적인 명예와 성공으로 전락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어쨌든 우리는 대부분 세속적인 관점에서의 성공을 칭송하고 즐기는가부다.
......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존경은 하였으나 믿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 때문이었다. 30세가 될 때까지 한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던 한 청년에 불과했다. 집안도 잘 잘고 있는 집안이었다. 별것 아닌 집안, 별것 아닌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집안에서 랍비 하나가 나왔다는 것은 칭송할 일이지만 가끔 있을 수 있는 일에 불과하다. 이것이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 더 깊이 믿고 사랑하면서 살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특히 가장 가까운 함께 사는 형제, 자매들, 가족, 친지, 연인들을 서로 더 깊이 믿고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잘 알고 있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 선입견을 버리고 지금의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참으로 한층 더 맑게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다. 우리가 믿음에 진보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믿음이란 매일 새로운 눈으로 하느님과 이웃과 사물과 자연들을 만나는 데 있다. 그런데 과거의 눈으로, 과거의 시각으로 대상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새로움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러한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오늘 마을 사람들에게 푸념하셨듯이 이렇게 말씀하리라: "도데체 이사람들이 왜이리 믿음이 없는걸까?"
그래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형제 나의 자매, 나의 남편, 나의 아내를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대해보자. 얼마나 새롭게 다가오겠는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호감과 정감을, 예의와 따스함을 보이듯이 그렇게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보자. 그 안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 아, 그제서야 믿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경탄케 되리라.
암, 그렇구 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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