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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 준균 | 작성일2001-03-17 | 조회수4,933 | 추천수48 | 반대(0) 신고 |
여기에 글을 처음 써 본다. 이 글이 '묵상'에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사순시기에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되새겨주는 내용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조그만 병원에서 신경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이다. 여기에 와서 1년 넘게 공장에서 일해오고 있다. 나와 같이 35세인데 벌써 6명의 아이가 있고 부인과 아이들은 모두 필리핀에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월 28일 저녁무렵이었다. 응급실에서 연락이 와서 가 보니 그가 누워 있었다. 형과 같이 살고 있는데 아침에 머리가 아프다며 일을 나가지 않았다. 점심때 전화를 해보니 '어어어' 하며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녁에 형이 돌아와 보니 기어서 나와 문을 열어주었지만 대화가 불가능했다. 진찰을 해 보니 환자의 문제는 우측 팔다리의 근력약화(마비)와 언어기능의 소실(실어증)이었다. 틀림없는 좌측 대뇌의 문제였다. CT를 해보니 좌측 대뇌의 광범위한 뇌경색이 있었고 12시간 정도 지났지만 벌써 뇌부종으로 인하여 좌측뇌가 중앙선을 넘어 우측 뇌를 밀고 있었다. 뇌실도 짜부라져 있었다. 그의 형에게 이야기 하였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4-5일까지는 계속 뇌부종이 진행될 것이고 지금까지 저의 경험으로 보면 틀림없이 뇌탈출(심한 뇌압상승으로 인해 뇌가 두개골의 제일 아래있는 구멍으로 빠지는 것)로 사망하는 경과를 취할 것 같습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두개골 절개술을 해서 뇌압을 줄여주는 것인데 그러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읍니다. 문제는 그 경우 훨씬 많은 경비가 든다는 것이고 큰 돈을 들여 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이미 손상된 뇌조직은 회복이 안되어 심각한 신경기능의 장애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스스로 걷거나 수저질하는 것이 안될 가능성이 크며 언어기능의 장애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큽니다. 즉 큰 돈을 들여 수술하더라도 순전히 뇌탈출을 막아 생명을 유지하는 의미이며 이미 경색이 온 부위는 기능적으로는 끝장이 났다는 말이지요. 기능이 돌아오기에는 손상 부위가 너무 광범위합니다. 환자가 60세 이상의 노인이라면 큰 고민없이 수술않고 편히 가시게 가족들을 설득합니다. 왜냐하면 환자도 고생고생하다 돌아가실 것이 뻔하며 그동안 가족들도 환자 간병하랴 병원비 대랴 고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페르디난의 경우 너무 젊고 딸린 가족들이 많아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판단이 잘 서질 않습니다. " 이 외국인 노동자가 수백만원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정도의 뇌 손상이면 '인간구실'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의 가족들은 간병하느라 일을 할 수 없어 2차적 노동력 상실로인한 경제적 타격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런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며 나는 그의 형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페르디난이 일하고 있는 회사의 사장님도 오셨는데 역시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 마침내 그의 형이 대답했다.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결정하십시요. 결정을 그대로 따르겠읍니다." 입원을 시켰고 비용은 사장님이 부담하겠다고 하셨다. 고마웠다. 내심으로는 약으로 최선을 다하다 3-4일뒤 결정적 순간(뇌탈출)이 왔을 때 수술않고 그를 편히 가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이 그에게도, 남은 가족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3일뒤 그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자꾸 잠만 자려고 했다. 오늘 밤을 못 넘기리가 생각했다. 사장님을 만났다.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수술을 하면 살 수는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지만 할려면 지금 바로 수술하는게 좋습니다."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그들이 돈이 없을 테고 어차피 내가 낼 수밖에 없을 것같아서요.- "아마 수백만원 들 것입니다. " 잠시 하늘을 멍하니 보더니 그가 대답했다. -수술을 하시지요. 송장 보내는 것 보다는 인간구실 못한다 해도 살아서 자기 나라로 가야하지 않겠읍니까?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아직 어린 아이들이 여섯이나 있다잖아요.-
수술 바로 직전 그를 관찰한 결과 좌측 동공이 완전 풀려 동공반사가 없었고 의식은 완전 혼수상태였다. 뇌탈출이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수술을 받았다.
그가 어제 퇴원을 했다. 몸에 붙었던 모든 튜브를 뺐으며 실밥도 뗐다. 간단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밥도 입으로 먹을 수 있다. 물론 걷거나 손을 쓸 수는 없지만. 사장님을 만났다. "지금 생각하면 수술한 게 너무나 잘 한 일인 것 같습니다. 비록 예전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의 아내와 6명의 아이들이 페르난도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 수백만원의 병원비를 생각하고 선뜻 입원하자, 수술하자 할 수가 없었었읍니다. 솔직히 그랬읍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기도중에 생각해보니 사순절 기간중 예수님께서 나를 시험해 보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너희들이 나를 사랑한다, 기도한다 말은 잘도 하지만 정말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어디 보자하면서 힘없는 병든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왔다는 생각말이지요. 지금은 마음이 너무 개운합니다. 그는 50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전액 부담했으며 필리핀 가는 두 사람의 항공료까지 부담하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들에게 돈이 없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사장님)를 만나며 줄곧 들었던 생각이 '마음이 약해서'라는 것이었다. 적지않은 비용에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마음이 약해' 입원을 시켰고 '마음이 약해' 수백만원을 부담했고 그들이 안쓰러워 항공료를 부담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얼마나 '강하게' 무장되어 있는가? 그건 내 소관이 아니야, 다 자기 탓이지, 수많은 집단이 있다보면 낙오자도 있는 법이야 대국적으로 생각해야지.... 이라크에서 수많은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죽어가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밤새 폭풍우 속에서 지샌 가족이 1살배기 아기를 잃을 때에도, 수많은 어린이들이 아동 포르노촬영에 동원되고 심지어 살해까지 되어도 우리는 한번보고듣고 지나친다. 한 때는 우리들도 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병원을 나서는 그의 경쾌한 뒷모습을 보며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의 약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페르디난을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수백만원의 병원비를 감해준 병원측에도 감사를 드린다.
이준균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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