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옆으로 찢어진 배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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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영진 신부 | 작성일2001-03-17 | 조회수3,487 | 추천수34 | 반대(0) 신고 |
오늘은 사뭇 우울한 기분이 잦아든다. 이유도 없이???
나는 이곳 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 본당신부로서는 첫 사목지이기에 매일같이 재미있고 보람스럽고 기쁘기만 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로만 알고, 싱글벙글거리면서 부임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째다. 사목하면서 기쁘고 보람스러울 때도 많지만 기분이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우울할 때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다 나의 부족함과 무능력 탓에서 오는 자업자득이겠지만서도 스스로에게 잦아드는 고독함과 서글픔 때문에 우울할 때가 있다. 그렇게 우울할 때면 가끔 낚시대 울러메고 강가나 호수로 가곤 한다. 고요한 호수위에 예쁘게 서 있는 찌를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든다. 그럴때마다 나로 하여금 미소짓게 하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리곤 하는데 오늘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년전 여름, 춘천 의암호에 인접해 있는 밤나무 골이라는 동네 어귀에서 본당 사목위원 연수를 가질 때였다. 연수 이틀쨋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광야의 체험을 내보내고, 나는 부모를 따라온 꼬맹이를 돌봐주면서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2시간 가량을 꼬맹이들과 놀고나니 점심때가 되었고, 나는 아이들 먹을 것을 챙겨서 휴식 겸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귀여운 꼬맹이들은 내 주위를 둘러싸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는데, 그 중 한녀석이 나의 배꼽을 가리키면서 경상도 사투리로
"신부님예, 와 신부님 배꼽은 야풀때기로 째짔습니꺼?" 표준말로 번역하면 "신부님, 왜 신부님 배꼽은 옆으로 찢어졌어요"이다. (배에 살이쪄서 뱃살이 두꺼우면 배꼽이 동그랗지 못하고 접혀있기 때문에 애들 눈에는 찢어진 것처럼 보였을게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 한참을 ?????!!!!! "응, 신부님 배가 뚱뚱해서 그래" 설상 가상으로 옆에 있던 여자 꼬맹이 왈 "신부님 배는 우리 엄마 배 닮았다" "뱃속에 아기가 있나 봐" ......................... 이글을 써면서 다시한번 내 배를 들여다 본다. 이제 배꼽은 아예 안으로 기어들어가 보이지도 않는다. !!!??
그래! 삶은 희극이어야 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 회개는 여러 측면에서 묵상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 나의 회개는 우울함에서 벗어나 새 물결, 새 빛으로 환히 밝아지는 것이고 싶다. 그래! 회개는 기쁨이요, 자유이며, 해방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너그러운 용서이다. 그래서 그분이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촉촉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것이다.
난 오늘 이 기도를 바치면서 밝게 밝게 웃는다.
우울할 때
주님, 저는 지금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만 물들고 있음을 슬프게 바라봅니다. 하늘도, 땅도, 이웃도 흐린 빛으로 멀어지고, 저의 삶은 전혀 또렷하지 않습니다.
주님, 재 영혼을 새 빛에다 행구어 주소서. 저에게도 남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힘과 아름다움이 있고, 자신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생각과 노래가 있음을 발견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다시금 푸르게 빛나고. 이웃이 다시금 밝게 다가오는 것을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주님, 열린 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진실로 알게 하소서. 제가 지금 앓고 있는 이 우울의 고통은 자신을 열지 않아 얻은 병임을 알게 하소서. 제 영혼을 밝은 영원쪽으로 활짝 열어주시어, 무엇보다 먼저 저 자신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사랑의 빛을 내려주소서. 또한 자신을 밝게 이해하는 지혜와 힘을 허락하소서. 그리고는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시고, 하느님의 성스러움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영혼이 새 물결, 새 빛으로 환히 밝아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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