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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사랑을 받아주시오(주님만찬 성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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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1-04-13 조회수1,931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1, 4, 12  주님 만찬 미사 강론

 

 

요한 13,1-15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예수)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저녁을 잡수실 때 악마는 이미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한편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맡겨 주신 것과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그는 "주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너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베드로가 "안 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 하고 사양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하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주님, 그러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목욕을 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그만이다. 너희도 그처럼 깨끗하다. 그러나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 넘길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셨으므로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고 나서 겉옷을 입고 다시 식탁에 돌아와 앉으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왜 지금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는지 알겠느냐? 너희는 나를 스승 또는 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실이니 그렇게 부르는 것은 옳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오늘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미사를 통해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러기에 오늘은 우리 신앙인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기쁨의 날이요 감사의 날입니다.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조촐한 자리에 당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시는 예수님과 아직도 주님이요 스승인 예수님의 마지막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이 함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여느 해의 과월절과 다를 바 없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생애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입니다. 과월절을 맞이하는 제자들의 기쁨과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예수님의 애절함이 함께 녹아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이 어우러져 있는 어색한 만찬 자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 극진한 사랑은 종이 주인에게 했던 '발씻김'이라는 행동을 통해 표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지막을 모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과월절을 지내려는 제자들에게 원망 어린 눈빛이나 서운함의 한탄을 던지지 않으십니다. 다만 살아 생전에 마지막으로 쏟아 붓는 당신의 사랑을 받아줄 것을 바라실 뿐입니다.

 

'스승이요 주인 내가 당신들의 발을 씻으려 합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의 몸짓입니다. 기꺼이 받아주시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이 지닌 의미를 깨닫지 못한 베드로는 거부합니다.

 

"주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안 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어도 모자랄 판인데,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으심으로써 자신의 종노릇을 한다는 것은, 베드로 사도에게는 있을 수도 없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인간 베드로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당연한 거절이었지만, 이는 곧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당신을 씻어 주지 않으면 당신은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신을 따른 이들에게 참으로 소중하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랑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그 사랑을 베푸는 이와 참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자신의 뜻이나 처지를 고집하지 않고, 사랑을 베푸는 이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며, 자신을 그 사람과 일치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은 자신이 받아들인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변화되기 마련입니다. 이제 이 사람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척 하지 않고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다해 그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말입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봅니다.

 

"스승이며 주인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여러분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일을 여러분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하느님이 굳이 사람이 되신 것, 사람들에게 내쳐지고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외롭게 죽어가야 했던 보잘것없는 수많은 이들의 벗이 되신 것, 바로 이 때문에 죄 없으신 분이 온갖 모욕을 겪으시면서 치욕적인 수난의 길을 걸어가신 것, 당신을 배반한 이들을 조건 없이 용서하신 것, 이 모두는 주님께서 사랑 자체이시기에 가능했던 인간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신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로부터 사랑의 초대를 받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기쁘게 받아 안으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 허물 가득한 부족하고 나약한 죄인이기에 주님의 사랑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받아 안을 용기를 주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써 당신과 하나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도 당신처럼, 메마른 이 세상에 사랑이 넘쳐흐르게 하는 사랑의 샘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이제 주저하지 말고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채워야 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내세워 주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은 참된 겸손함이 아니라 교만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이제 주저하지 말고 우리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아니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짐으로써 변화된 우리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온전히 내어놓아야 합니다. 참으로 소중한 것을 곱게 간직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받은 주님의 사랑을 자신 안에만 담아놓으려 한다면, 이는 주님께 대한 참된 감사와 찬미가 이기심과 탐욕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이겠습니까? 더 이상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무엇이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우리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형제 자매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걸림돌이 되겠습니까?

 

오늘은 아낌없는 주님의 사랑을 받은 감격스러운 날입니다. 오늘은 나를 온전히 주님과 이웃에게 봉헌하기로 다짐하는 가슴 벅찬 날입니다.  이 기쁨, 이 감격에 우리 모두 흠뻑 취해 수난 감실에 모셔질 주님의 성체 앞에서 이 밤을 보낼 수 있기를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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