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시 숨 쉬는 마음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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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이다 | 작성일2001-04-17 | 조회수2,383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그전에 이런저런 고생을 하도 해서 매번 힘든 부활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올해도 그러려니 하고 사순절이 되기도 훨씬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색다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사순도 성주간도 심지어는 부활조차도 너무 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우연치 않게 기회가 되어 해외 성지순례를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기가 꼭 성주간과 겹치게 되어, 본의 아니게 우리 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성주간과 부활을 보냈던 것입니다. 사실 그때는 많은 분들과 함께 했던 성지순례였기에 또 이렇게든 저렇게든 책임을 진 위치였기에, 오히려 국내에서 부활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느님께는 죄송스럽지만, 특별한 느낌도 없는 성주간을 보낸 듯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활절 성야의 그 특별한 시간을 마음에 두며 살았기에 더욱 그 느낌이 아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부활절은 아예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얼마나 가벼운 사순절과 부활절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십자가를 질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가시관과 채찍과 조롱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못 박히는 두려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감상의 한 부분으로서 남았던 것이, 30년 넘게 제가 체험했던 부활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십자가의 기회도, 가시관의 기회도, 채찍의 기회도, 조롱의 기회도, 망치소리를 들을 기회도 얻지 못한 이번 부활절은, 숨 쉬는 것조차도 부끄럽게 여겨지는 부활절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숨 쉬는 것을 허락하시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신 하느님을 생각해 보면 이런 저의 부끄러움조차도 굉장히 고맙게 생각됩니다. 그래서 다시 숨 쉬는 마음으로 살아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한 분의 죽음으로 가능해졌고, 그 가능성 때문에 오늘 또 숨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확인하며 살고자 합니다.
몇 일 전에 저희 집 개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일곱 마리나 낳았더군요. 그 낳는 과정을 다섯 시간이나 지켜보면서 그저 숨 쉬는 생물체처럼 살았던 저의 지난 날을 반성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그냥 숨만 쉬며 살지 않고 진정 죽음을 준비하는 숨쉬기를 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기회에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죽음과 부활을 체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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