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함께하는 사랑과 기쁨(부활5주 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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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5-17 | 조회수2,430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2001, 5, 17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요한 15,9-11 (나는 참 포도나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묵상>
"사는게 기쁘세요?" 누군가 물어봅니다. "그럼요, 얼마나 기쁜데요." 저는 자신있게 대답을 하지요.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그렇게 기쁠까 하고 조금은 의아한듯이 조금은 부러운듯이 바라봅니다.
흔히 기쁨을 고통이 없는 상태로 생각하는듯 합니다. 그렇지만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오히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당장에는 고통에 짓눌려 내면에서 용솟음치는 기쁨을 미쳐 느낄 겨를이 없다가도, 시간이 흘러 그 순간을 회상하면서 뒤늦게나마 기쁨을 붙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게 기쁨을 주었던 시간들을 돌아봅니다. 삶에 지친 벗들의 한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시간들, 어려운 신학 서적을 머리싸매고 읽고 묵상하던 시간들, 자유와 정의를 위해 목이 터지라 외치던 순간들, 벗들과 어울려 땀흘리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던 순간들, 한잔 술로 서로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던 순간들, 올바른 삶을 고민하며 밤잠 못자고 갈등하던 순간들, 떨리는 목소리로 성체와 성혈을 축성하던 시간들, 고해소에서 서너시간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신앙의 벗들과 함께 하던 시간들...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시간들을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어쩌면 삶 자체가 기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왜 삶이 기쁨이었을까? 왜 그 순간순간이 기쁨이었을까? 누군가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과 진실하게 마주했을 때, 벗들과 함께 했을 때, 나를 이끌어주시고 나와 벗들을 하나로 묶어주시고 또한 끊임없이 당신의 품으로 부르시는 주님과 하나되었을 때, 바로 기쁨이 저를 감싸안았습니다.
함께 하는 것이 기쁨이고 이것이 곧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제게 그저 함께 하자고만 말씀하십니다. 다른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함께 있자고만 하십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곧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제게 주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에 눈이 시려옵니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이 사랑하며 기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는데, 이런 제게 무엇이 부족한지 예수님께서는 제 마음을 계속해서 두드리십니다. 제가 기쁘게 살지 못해서가 아니겠지요. 제 기쁨의 뿌리를 알려주시려는 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도 빼앗아가지 못할 참되고 영원한 기쁨에 대해 깨닫게 해주시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벗들 안에, 그리고 제 안에 머물러 맘껏 사랑하고 맘껏 기뻐하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수놓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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