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설명이 필요없는 만남(5/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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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영숙 | 작성일2001-05-31 | 조회수2,188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주님의 어머니가 ’먼저’ 방문을 하신다. 예수님도 부활하신 이후에 늘 당신이 먼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결코 당신의 자리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우리가 부르기도 전에 설사 우리가 문을 꼭꼭 닫고 있을 지라도 먼저 방문하신다. 나도 이웃이나 혹 나보다 어린 사람,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을 내 자리로 부르는 교만함에서 벗어나 내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서는 ’눈높이 사랑’을 실천해야지.
두분의 만남에는 설명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받아들임. 성모님의 상황이 결코 그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복되다 말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엘리사벳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앙인의 눈으로 바라다 본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는 사물을 바라다 보는 관점이 시작부터가 다른 것이다. 다섯번째 아이를 임신한 친구에게 너무 좋아보인다 하니 그녀가 말하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란다. 사람들은 자기에게’어쩌니!’라고 하며 측은해하기만 한단다. 나도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면 늘 그녀에게 먼저 말한다. 엘리사벳처럼 그녀도 아무 설명 없이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고 기도해 준다. 쓸데없는 설명과 구차한 변명이 필요가 없는 만남이다.
마리아는 인간적인 설명 없이, 구차한 합리화의 작업없이 정말로 느낀대로 말한다. 우리는 다치거나 힘들 때 은총이라고 느껴져도 남들에게 그렇게 말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신앙적인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면 그런 말은 때론 우습게 들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또한 그들이 그렇게 취급할 것이 두려워 인간세계의 말로 그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썰렁해 하고는 한다. 설사 그가 신앙인이라고 해도 "그것은 억지야"라고 말하고는 한다. 신앙인다운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가 많다. 왜 그토록 주님이 목마르다고 하셨는지 알 것 같은 때가 있다.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이 상황 그대로의 받아들임.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 성모님은 인간들의 경제학이 아닌 하느님의 경제학을 깨닫고 계신다. 인간적인 것으로 채워진 이에게는 하느님의 것이 빈다. 인간적인 것이 비워질 때 그곳에 우리는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지는 은총을 받을 수 있음을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일깨워 주신다.
오늘 우리가 ’비우는 자’ 되게 하여주시고 이웃을 위해 ’먼저 방문하는 자’ 되게 하여주시고 내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순종의 미학을 깨닫는 자’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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