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소서 성령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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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1-06-03 | 조회수2,426 | 추천수23 | 반대(0) 신고 |
굿뉴스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아름다운 생존*
"이봐요!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너절한 행색에 냄새마저 나는 부녀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주인의 말에 머뭇거리다가 앞을 보지 못하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인은 그때서야 그들이 구걸을 하러 온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저어, 아저씨! 순대국 두 그릇 주세요."
주인은 다른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고 돈을 못 받을지도 모른는 그들에게 음식을 내준다는 게 왠지 꺼림칙했다.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은 손짓을 하며 아이를 불렀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이야."
"아저씨, 빨리 먹고 갈게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거든요." 주눅 든 아이는 잔뜩 움츠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다 말고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는 비에 젖어 눅눅해진 천 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다.
"알았다. 그럼 저쪽 끝으로 가서 앉아.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화장실이 바로 보이는 맨 끝자리로 옮긴 부녀에게 순대국 두 그릇이 나왔다.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순대국이야. 아빠, 내가 소금 넣어줄께. 잠깐만 기다려."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통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국밥 속에 들어 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아빠의 그릇에 가득 담아 주었다. 그리고 나서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순영이 너도 어서 먹어라. 어제 저녁도 못 먹었잖아." "나만 못 먹었나뭐,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어. 어서 밥떠, 아빠, 내가 김치 올려줄게." 아빠는 조금씩 손을 떨면서 국밥 한 수저를 떴다. 수저를 들고 있는 아빠의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는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넉 장과 동전 한 움큼을 내놓았다. 주인은 도저히 돈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의 정성을 봐서 재료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핑게를 대며 이천 원만 받았다. 그리고 사탕 한 움큼을 아이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세상이란 밀림 속에서 사람들은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사자든 호랑이든, 누가 밀림의 왕이 되어도 좋다. 하지만 움츠리며 살아가는 이름 모를 벌레나 들쥐, 파리에게도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생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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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이다. 우리 교회의 창립일이자 생일날이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생일을 맞이한 순영이 아빠의 모습이 우리 교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외형적으로 우리 교회는 순영이 아빠와는 달리 아주 화려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 볼 때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장님과 다름없는 그런 모습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순영이 같은 마음을 지닌 착한 영혼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이들이 오늘 아빠인 교회를 위해 생일상을 준비하고 온 맘으로 축하를 드리려 한다고 생각된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영혼들을 필요로 한다. 비록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그런 모습으로 비틀거린다 하더라도 순영이 같은 영혼들이 이 교회의 삶을 아름답게 비추어 줌으로써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
오소서 성령님! 우리 신자들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내리소서. 무엇보다도 순영이 같은 마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게 따뜻한 마음을 주소서.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능력보다는 따뜻한 말을 전할 줄 아는 능력을, 치유의 능력보다는 영육으로 병든 영혼을 감싸 안을 줄 아는 능력을, 화려한 열광으로 기도하기보다는 조용히 당신 말씀을 음미하며 기도할 줄 아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하여 앞을 보지 못하는 우리 교회를 순영이처럼 우리 신자들이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도우소서. 교회가 그 때문에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참된 회개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하소서. 무엇보다 일치와 친교의 영을 내리소서.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형제자매로서의 정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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