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왜 맹세하려고 하는가?(연중 10주 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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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6-16 | 조회수2,017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01, 6, 16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마태오 5,33-37 (제4 대당명제: 맹세하지 말라)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 네 맹세대로 주님께 해드려라'고 옛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여러분은 또한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아예 맹세하지 마시오.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시오.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시오,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시오. 크신 임금님의 도읍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시오. 당신은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말을 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시오. 이보다 넘치는 것은 악한 자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묵상>
[맹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전에 이런 일을 했다 또는 하지 않았다고 단언하면서 상대로 하여금 자기 말을 믿도록 하려고 하느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맹세가 있으니, 곧 과저지향적-단정적 맹세이다. 이와 관련하여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마태 5,33a = 레위 19,12)고 한다. 이와는 달리 앞으로 하느님께 사랑, 짐승, 집 또는 토지를 바치겠다고 맹세하거나 무슨 선행을 하겠다고 하느님께 약속하는 맹세가 있으니, 곧 미래지향적-서약적 맹세이다. "내 맹세대로 주님께 해드려라"(마태 5,33b=신명 23,22-24; 민수 30,3; 시편 50,14)가 바로 미래지향적-서약적 맹세이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마태오 복음서 64쪽 각주)
사람들은 자신의 결연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맹세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맹세가 자신을 과장하고 타인의 인정과 믿음을 구차하게 동냥하는 부정적인 기능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맹세를 남발하는 사람을 보면 왠지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묵묵히 삶으로 보여주면 될텐데, 굳이 맹세를 함으로써 짐짓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의 삶에 자신이 없거나 충실하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또한 오늘의 삶에 충실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없는 사람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가졌던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랑스러운 모습을 강조하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알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을 강변함으로써 오늘의 부족한 모습을 향한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할 것입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오늘의 삶에 충실할 때에 비로소 오늘이 있도록 한 과거의 삶이 의미를 가지게 되고, 내일의 삶 역시 희망으로 받아 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시오. 이보다 넘치는 것은 악한 자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에 충실하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에서 '오늘에 충실하다'는 것은 교만이나 자기 과장, 위선이라는 악한 의도가 배제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요.
또다시 주님의 날을 맞습니다. 이번 한 주간의 삶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돌아보면서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주실 한 주간을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시간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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