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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차지해야할 땅은 어디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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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미라 쪽지 캡슐 작성일2001-06-25 조회수1,985 추천수10 반대(0) 신고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시고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향하여 모든 것 다 버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분은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아브람에게와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하늘" 아래 "땅" 위에서 살아 숨쉬며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준다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은 바로 ’나의 생명’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돌아갑니다. "나"도 지금까지 살다가 돌아간 사람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돌아갈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돌아간 그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돌아갔을까?  "나"는 어디서 왔을까? "나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며 과연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나"!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준다해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생명’!

 그러나 나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어디로 돌아갈 것이며, 어떻게 해야 나의 소중한 생명을 지킬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모르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러시아에서 전해내려오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치의 땅도 없는 어떤 가난한 농부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땅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를 안 대지주가 그에게 "네가 해가 들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출발 지점으로 돌아온다면 네가 밟은 땅을 모두 네게 주겠다." 라고 하여, 그는 해가 뜰 때부터 더 많은 땅을 소유하기 위하여 달리고 도 달려 아주 멀리 달려갔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해사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놀란 그는 되돌아서 있는 힘을 다해 뛰어서야 겨우해가 넘어가는 그 순간에 출발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지친 그는 그 자리에 쓰러져 영영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것을 본 대지주는 "츳츠츠, 결국 제 몸뚱어리 하나 누일 땅밖에 차지하지 못했구나!" 하며 안타까워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위에 이야기에서의 가난한 농부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적당한 시간까지 달려가다가 출발지점으로 돌아갔다면 그는 "자신의 땅"을 차지하여 적당히 건강을 유지하면서 그 땅을 경작하여 소출을 얻어내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달려가다가 결국에는 한 치의 땅도 차지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야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비단 그 농부의 이야기일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돌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노력하여 ’나의 땅’을 차지한 후에 씨앗을 뿌리고 땀흘려 일해서 알곡을 거두어들여 ’영원한 나의 집인 하늘나라’

곡간에 쌓아 놓아야할 책임과 의무를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내가 거두어들인 알곡’은 바로 영원히 먹을 ’나의 양식’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땅’을 차지하려는 마음조차도 갖지 않은 채 평생을 소작인으로 만족하며 당장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자신을 치장하는데만 급급해 허송 세월을 보낸 후에 결국에는 빈털털이로 "근원이신 분" 앞으로 불려가게 되고, 그 때에 ’자기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마련 한 양식’이 없기에

아버지집에서 쫓겨나 춥고 어두운 바깥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를 갈며 통곡하게 될지.....(마태오 25, 30 참조)

 

 

 사람은 때가 되면 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고 이끌리어 살지만,

 어른이 되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자신의 앞길을 결정하고

 부모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홀로서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홀로서기’를 준비해야할 때는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 때가 되면 누구나가 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등등.

 

 최소한의 생각이라도 하면서 자신의 앞날을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남은 삶을 살아가게 되며, ’자기 자신의 가치’는 그러한 ’자기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삶’으로 인해서 판가름이 납니다.   

 그러기에 이 시기에 ’자기 스스로의 결정’은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것이며, 결코 단순히 흘려 보낼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좀더 진지하게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 때문에, 어떻게 생겨났을까?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내가 태어난 목적에 맞는

         가장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중요한 시기에 이러한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 얻어 "최고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그런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힘을 다하여 ’최고의 것을 찾아 길을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그런 저런 생각없이 물이 흐르듯이 흘러가는 세류에 자기 몸을 맡긴 채 - 떠나려고 하기는 커녕 - 눈에 보이는 것(부귀영화. 명예. 학식. 권력)에 가치를 두고 거기에 걸맞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더 가까이가려 최선을 다해 힘을 씁니다.

 

 태고 이래로 이 땅에서 살다간 많은 사람들 중에 소수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보다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 눈에 보이는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초개같이 버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것’을 찾아 나서 거리를 헤매는 방랑자가 되기도 하고, 산 속으로 들어가 은둔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뜻을 모아 ’그 무엇’을 함께 찾기 위해 공동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땅에 속한 것들을 얻으려 애를 쓰고 살다간 더 많은 사람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찾아 길을 떠난 이들’은 바보였을까요?

 

 그들 중에는 간혹 자기가 찾고자 했던 것을 찾아 얻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끝까지 찾아 얻지 못한 채 죽어간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것을 얻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보다는 더 많은 것을 마음에 품고 이 세상을 떠나 자기의 근원지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나그네 길’이라는 말도 있듯이, 눈에 보이는 이 세상 것을 얻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은 그들이 얻었던 재산도, 부귀도, 명예도, 학식도 다 버리고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야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이 빈 손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그 순간에 두 손을 꽉 움켜쥐고 나와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기고는 죽는 그 순간까지 무엇인가를 손에 잡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발버둥칩니다.

 그러나 죽는 그 순간에 두 손을 꽉 움켜쥐고 가슴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는 과연 죽음의 그 순간에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겨

      내 것으로 만든 것들을 두 손에 움켜쥐고 갈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내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닥치는 마지막 순간에

      내게 이로운 그 무엇을 가지고 나의 근원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돌아간 그곳에 네가 편히 쉴수 있는 내 땅은 과연 있을까?’

 

 

 

 ** 저는 1972년 대림 때부터 "나는 이왕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향해가는 길을 찾아 헤매기 시작하여 과연 그 길을 찾게 되었는데, 그 길은 바로 2000년 전에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마련해 주신 "참행복의 길"(마태오 5,2-12)이었습니다. 저는 그 길을 달리기 시작하여 28년이라는 긴 세월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달려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 그 "참행복의 맛"을 더 많은 분들이 맛볼수 있게 해드리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성령강림 대축일부터 하고 싶었는데, "예수 성심대축일"이자 "사제 성화의 날"로부터 이 일을 시작하게 해주신 주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참행복을 얻어 누리기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조금씩 나눠서 글을 올리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한 분이라도 그 길의 참뜻을 알아듣고 참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께서 "참행복"을 주시기를 비옵니다.

  

                                    참행복 나눔터 박미라 도미질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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