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갈과 마리아...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슬픔의 잔(79) | |||
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1-06-28 | 조회수2,020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말씀>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묵상>
오늘 독서는 아브라함의 두 여인, 사래와 그 몸종이었던 하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요즈음 흥행하고 있는 사극 태조 왕건에 있어서나 조선왕조 실록을 통해서 우리는 왕후들과 후궁들 사이에 빚어졌던 소위 태자들 싸움을 잘 알고 있다. 오늘의 이야기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말하자면 정실부인이요 중전인 사래에게서는 태자가 없다. 그래서 중전인 사래는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후궁으로 들여보낸다. 그래서 몸종에서 후궁이 된 하갈이 태기가 있고 아들을 갖게 되자 그 주인이요 중전인 사래를 업신여기고 자신이 마치 중전인양 교만해지게 된다. 사래는 황제인 아브라함에게 이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하갈을 쫓아낸다. 하갈은 왕자 이스마엘과 다른 부족은 형성하지만 하느님의 눈에 들지는 못하였다.
하갈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몸종의 신분에서 후궁이 되었다면 더이상 바랄 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후자리까지 넘보고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 아니겠는가?
하갈을 떠올리면 나는 성모님이 같이 떠오르게 된다. 성모님은 오히려 자신을 몸종의 신분으로 낮춤으로 해서 천상모후의 관을 받으신 지험하신 모후가 되지 않으셨는가 말이다. 성모님의 처세를 하갈이 배웠더라면 그도 왕후가 될 수 있었으리라. 겸손과 자신을 낮춤이 오히려 왕후가 될 자격이었는데 교만과 욕심 때문에 오히려 더 패가망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하잘 것 없는 몰락한 지주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룩한 교회 안에서 사제요 수도자가 된 것이 아닌가? 더이상 무얼 더 바라겠는가? 나는 후궁이 된 것으로도 족히 만족해야 한다. 아니 그러기에 더더욱 낮은 자가 되고 봉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갈처럼 되지 않고 성모님처럼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하갈은 사래를 주인(주님)이라 불렀지만 사실은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하였다. 성모님은 진정 자신이 종이 되고 주님을 주님이시게 받들었다.
그렇다! 진정 내가 주님의 종이 되고, 주님이 주님이시게 하는 길이 구원의 길이다.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