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안의 물음과 하나님의 물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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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후임 | 작성일2001-07-06 | 조회수1,96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말씀; 창세기23,1-4.19; 24,1-8.62-67 마태복음9,9-13
오늘은, 제 안에서 일어난 싸움을 잠시...
창세기를 만나면서 속이 별로 좋지 않았슴다. 오늘의 본문이 무슨 뜻인지,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려는 지 알지요.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인간을 하염없이 사랑하심이 보이거든요. 사라가 죽자, 슬퍼하는 아브라함에게 더 큰 복으로, 어머니잃은 슬픔에 가득한 이삭에게는 리브가를 통해 위로하시는 하나님. 참으로 세밀한 사랑을 지니신 분....
그런데 이 좋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내겐 기분이 별로인 것이다.(어? 이래도 되나??) 솔직히 불만이 올라온다. ’근데, 왜 위로자는 여성이어야만하는데?’ 이 물음을 만나니, 또 한 구석에서는 "위로자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역할인데, 그것이 여성이라는 것,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거 아냐?" 그런데도 지지않는 내 안의 목소리. "근데 왜 꼭 그렇게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건 여성이어야 하냐구. 왜 남성은 돌봄을 받고, 위로를 받아야 하냐구. 실제로는 힘의 자리에 있으면서..." 더욱 열받는 내 안의 나.
지가 이렇슴다. 애구.. 전 아직도 갈 길이 멀군여. 애구구... 내 안에 두 개의 내가 있음을 만나는 아침,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 바리새인인가봐요. 아니 바리새인임에 틀림없슴다. 세리인 마태. 유대인들에게 소외당해 고통스러워하는 마태를 부르시고 함께 밥을 나누시는 예수님께, 왜 죄인하고 지내느냐고 묻는 바리새인의 모습이 제게 있네요.
의사는 병자에게 필요하다며,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며 고통을 함께 나누시는 당신의 사랑 앞에 저절로 무릎이 꿇어집니다. 위로자이신 주님은 그것은 희생으로, 헌신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기뻐하시는 군여. 자신의 역할이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며 의인인척 살지만, 다른 이들의 고통을 받지 않으려는 바리새인에게 도전을 주시는 군여.
저도 바리새인임다. 남성들은 이미 충분히 누렸다고, 그런데 또 누려야 하냐구... 왜 여성들은 그들을 또 위로까지 해야 하냐는 내 안에 내게, 하나님은 물음을 주시네요.
과연 누린 것일까? 남성이라는 존재로 그들이 누린 것일까? 무엇을 누렸을까? 한번 생각해 봤니? 누리는 것 처럼 보이는 것, 진짜 그들이 누린 것이 진리이고, 자유이고, 해방이고,...사랑일까?
어쩌면 힘의 사회 속에서 그 힘이 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인간으로, 능력을 갖추지 않음 안되는 아픔으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누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빼앗긴 것은 아닐까? 인간됨, 감성, 사랑, 온유, 겸손, 절제, 인내,... 이런 것을 빼앗겨가며 그들이 가져야 했던 힘. 어쩌면 그것은 누림이 아니고, 죽음보다 무거운 고통은 아니었을까? .....
애구...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글구, 예... 남성과 여성으로가 아니라, 예...하나님이 사랑하며 함께 살도록 하신 친구로, 도반으로 맞이하도록 하겠슴다.
하지만, 하나님 제가 워낙 머릿속에 든것이 이런겁니다. 당신의 말씀으로 내 생각이 쪼개어 지니 감사함다.
말씀 첫 머리에서 답답하고 올라왔던 열이 내려가 가벼워진 지금 일체 은혜 감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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