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리버리하고 숫기없는 나로 인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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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1-07-11 | 조회수2,019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어제 저는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의식을 잃어버린 한 형제에게 병자성사를 주기 위해서 한 종합병원 중환자실을 찾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알게된 주치의는 부인에게 이 사실을 전했습니다.
"이젠 올 것이 왔으니 준비하십시오."
저는 환자의 가족되는 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자성사를 집전하고 중환자실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병자성사를 집전하던 때는 미처 몰랐었는데, 나오는 순간에야 저는 제 뒤쪽에 다른 환자분이 누워 계시다는 알게 되었습니다.
중환자실 안에 많은 수의 환자들이 계셨는데, 유난히 그분에게 제 눈길이 머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의식없이 누워있던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그분은 의식이 또렷했고, 제 느낌에 제가 병자성사를 집전하는 동안 줄곧 우리를 지켜보았던 것 같았습니다.
비록 산소 마스크를 끼고 계셨고 여러가지 주사나 장치들을 몸에 잔뜩 달고 계셨지만 그분의 눈빛은 확실히 살아있었습니다.
그분의 눈과 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제 마음이 너무도 아팠습니다. 차라리 의식없이 계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식이 또렷한 가운데 그 고통을 겪고 계신 그분의 모습이 너무도 안스러워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상황에서 저의 태도였습니다.
그 순간 빨리 그분에게 다가가서 손이라도 한번 잡아드리고, 힘겨워 하시는 그분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건넸어야 했었는데, 제가 용기가 부족해서, 제가 또 좀 어리버리하고 숫기가 없는 관계로 결국 망설이다가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그리고 어제 부터 지금 이순간까지 그 순간 제가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에 대해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하늘나라를 선포하여라. 병자를 고쳐주고 죽은 사람을 살려주고 마귀는 쫒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져주어라."
어떤 모습이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삶의 모습입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 그분께서 이 지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삶의 모습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꼐서는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그분께서는 당신 가장 가까이에서 고통당하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사랑의 실천을 한 시간 뒤 또는 하루 뒤로 미루지 않으시고 당장 그 자리에서 행하셨습니다,
죽어가는 이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즉시 손을 잡아주셨으며, 지체없이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떠돌며 고생하는 과부들을 그 자리에서 위로하시고 배고파 우는 아이들을 안아주시며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늘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를 선포함에 있어서 심사숙고하고 여러 계획을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의 생활 안에서 작은 것이지만 구체적인 선행을 순간순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앞에 섰을 때도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우리가 세웠던 원대한 계획, 좋은 마음들이 아니라 우리들이 행했던 아주 작고 구체적인 선행들입니다.
우리가 불행한 청소년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건넨 한마디 격려의 말, 낯선 이에게 베풀었던 한번의 작은 친절, 길거리를 떠도는 노숙자에게 베풀었던 한번의 자선, 병자 방문, 한번 용서했던 일, 이런 모습들이 하늘나라 선포의 핵심적인 요소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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