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는 왕이다!"(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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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미라 | 작성일2001-08-01 | 조회수1,50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참행복"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시작을 하고 한 달 동안은 거의 거르지 않고 잘도 썼는데, 요즘은 여름 휴가를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느라 한참을 그 맥을 잇지 못하고 있었기에 - 누가 시킨 일도 아니지만 -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서먹하기만 합니다.....
오늘은 십자가의 길 제1처에서 제가 겪은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1976년 2월.’마음 안에 하늘스런 궁성’, ’저 생명의 샘, 저 빛나는 해님’이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러 가려고 세상 모든 것 다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후에 여러가지 길을 찾다가 수도원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지만, 제가 선택했던 그 수도원은 자존심과 체면으로 똘똘 뭉친 너무나도 크기만한 "제 안에 숨어있는 교만심"을 없애기에는 생활 수준과 분위기가 너무나 좋다고 판단되었기에 교만하기 짝이 없는 제게는 너무나 과분하다고 생각되어 입회하는 것을 보류(76년 1월에 편지를 보냄)하고, ’네게 결혼 성소가 있는데 혹시 내가 결혼 생활을 수도 생활보다 더 더럽고 지저분하다거나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피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하느님께서 제가 결혼하는 것을 원하신다면 받아들이겠다고 결심을 하고,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때 저는 완전히 캄캄한 속에서 혼자 고통을 겪어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 시간은 바로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흘리며 고통과 번민에 쌓여 계신 예수 그리스도님과 함께 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고통을 충분히 겪고 난 후에 그러한 사정을 구체적으로 적어 오라버니 신부(박기현 실베스텔 사제)에게 보냈는데, "너는 지금 빌라도 앞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님처럼 1처에 서 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네가 왕이냐?’하고 물었을 때 ’아니다!’ 라고 대답했으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고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은 화려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과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 또한, 영광스러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있고자 한다. 그러나 그분과 같이 십자가의 길을 한 처 한 처 걷지 않는다면 결코 영광스러이 부활하신 주님의 곁에 함께 있을 수 없다. 너는 지금 1처에 서 있다. 네가 그 고통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아! 이것은 제게 너무나도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제가 가야할 길이 그토록 구체적으로 제시된 그런 길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주섬 주섬 성인들의 글을 보고 그들을 흉내내어 따라가 보려고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가야할 길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기에 그 길로 한 처 한 처 주님을 따라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십자가의 길의 한 처 한 처의 신비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다 써 논 책은 없었습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가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인데 가톨릭 기도서에 있는 기도문에조차도 2처에서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진다고하였지만 5처에서만 시몬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것으로 만족하며 고통당하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구경꾼의 입장에서 하는 기도문들이 고작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모르지만, 단지 ’나는 죄인이고 주님께서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신 길이니 주님을 따라 그 길로 나아가야겠다!’ 고 결심하는 일밖에....
그 때부터 저는 비로서 십자가를 생각하게 되었기에 늘 방에 걸려있던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왜 저분은 저렇게 십자가에 달려 계셔야 했을까?.....’ ’저분은 우리를 사랑해서 저기에 달려 계시다는데 아! 그러면 사랑=고통이구나!’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십자가를 바라보니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 순명으로 거기에 달려계신 분이셨습니다.
"교만과 불순명으로 죽게된 사람"을 다시 살려주시려고 겸손되이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여 십자가에 달려계신 주님! 그래서 저는 두번째로 "겸손=순명" 이란 등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때부터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십자가에 달려계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기 위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님의 겸손"을 얻으려 "고통"을 당하며 모든 일 안에서 "순명"하는 일만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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