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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해성사(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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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미라 쪽지 캡슐 작성일2001-08-21 조회수2,152 추천수9 반대(0) 신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은 "자신의 더러움으로 인해 신랑을 맞이할 수 없는 슬픔으로 눈이 짓무르고 더 이상 밥도 먹을 수 없는 처지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 처지가 된 사람이 해야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의 몸 속에 있는 더러움을 없애고 기꺼운 마음으로 신랑을 차지하기 위하여

자신을 더럽게 만드는 마음 속에 있는 더러움의 근원을 찾아내어 뿌리채 뽑아내는 일입니다.

 

 그 일을 더욱 잘하기 위하여 ’몸 속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심을 절제’하고

’자신의 살과 피를 이웃을 위해 내어 주는 일’을 하는 것인데,

자기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욕심을 절제하며 더러움을 없애려 하는 과정에서 더없이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님의 도우심’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길의 참 길잡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먼저 이 길로 가셨고,

  제게 이 길로 따라오라고 하셨기에 따라나섰지만,

  그분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결코 한마디 말씀도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느님!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이 넘치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께로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시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모든 해결책을 미리 다 마련해 두시고 그리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계층의 모든 사람이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당신을 만나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당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당신의 대리자를 뽑아 세우시고

미리 그 자리에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한 분뿐이신 십자가의 길의 길잡이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제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시어

당신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잘 걸어가도록

제게도 당신의 대리자인 "더없이 좋은 고해사제"를 주시었습니다.

그분(수도회 장상)은 제가 십자가를 지는 그 순간(2처)부터

세상 모든 욕심으로부터 벗어나 죽게 되는 그 순간(12처)까지

"눈에 보이는 길잡이이신 예수님"으로써

제게 힘이 되어 주시고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태초에 "빛이 생겨라!" 하고 말씀하신 "빛의 근원이신 신랑"을 차지하기 위하여

그분께로 나아가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구체적인 일은

’고해성사를 잘 보는 것’입니다.  

 

 죄인이기에 가는 길에서

죄를 없애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죄를 없애는데

"고해성사" 보다 더 좋은 방법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일에 또한 중요한 일은

"영성적으로 바르게 이끌어 줄 고해사제를 잘 만나는 것"입니다.

 

 대 데레사 성녀는 ’완덕의 길’ 4장 5절에서

"고해사제의 세속적 경향이야말로 위험 천만이요, 모든 수녀들에게 지옥이요,

해독을 끼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어느 의견을 따라야 할지 모를 적에 가장 현명한 방법은 어느 학식있는 분을 찾아서 말씀드리고, 그분에게 고해성사를 보고,

그분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4장 14절)이라고 하며 영성적인 풍부한 지식과 덕이 겸비한 고해사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5장 3절에서는 "이미 아시는 바와 같이 그 첫째 주춧돌은 바른 양심입니다.

온 힘을 기울여 소죄를 피하고, 가장 완전한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고해신부면 누구나 그런 것쯤은 알고 있겠거니 하겠지만은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나는 어떤 신부님과 양심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신학 과정을 다 떼신 분이었는데도 아무 것도 아닌 문제라고 말해 준 까닭에

나는 큰 해를 입은 일이 있습니다.

 물론 나를 일부러 속이려 했거나 또 그럴만한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그는 더 이상 지식이 없었던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이 말고 다른 두 세분하고도 그런 일이 또 있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는 완덕의 길로 나아가는데 고해사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고해성사를 잘보는 일"보다 제게 더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거의 2주에 한 번씩(기회가 있었기에) 고해성사를 보았는데,

성사를 보면 볼 수록 더욱 더 ’고백해야할 죄’가 더 많아지기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점점 더 죄를 많이 짓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죄를 점점 더 많이 지어서 ’고백해야할 죄’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럽고 추한 껍질을 없애면 없앨 수록 빛이신 그분과 더욱 더 가까워지기에 그 빛을 받아 더러움이 점점 더 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도 양파 껍질을 까면 깔 수록 더 두꺼운 껍질이 나오는 것처럼

’이런 죄를 범하지 않으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예전에는 전혀 죄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엄연한 죄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마침내 두꺼운 속 알갱이 속에 더 이상의 막이 없음을 알 수 있듯이

그 더러움의 끝을 보게 됩니다.

 

 아! 영혼의 신비여! 자연의 신비여!.............

 

 그것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처음에는 ’이웃에게 해를 입힌 것이 저의 죄’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웃이 제게 도움을 청했을 때 도와주지 않은 것이 저의 죄’였고,

그 다음에는 ’이웃의 바람대로 해주지 않은 것이 저의 죄’가 되었고,

마지막에는 ’이웃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영혼 사정을 도와줄 수 있게 저 자신이 깨끗하지 못함이 저의 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제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 저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것처럼 저도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저 자신을 온전히 깨끗하게 하려고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저의 더러움을 없애려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에도 "사랑하라!"는 것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신 대로 1-3계명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관한 것이고,

4-10계명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 관한 것이지요.

 

 마지막날 심판관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에도 오로지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느냐?"에 대해서만 물어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마태오 25, 40. 45.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다른 복음에서 가진 것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그분 말씀에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떠나갔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본 베드로가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 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백배로 또 영원한 생명까지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들이 따른 스승이신 분은 다만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있는 빵"으로서 사람을 살리는 먹이가 되는 일만을 하신 분이셨습니다.  

 

 이웃에게 참 생명을 줄 수 있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 되는 일!

그 일을 위해서, 오로지 그 일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존재하시며

오로지 그 일을 위해서 세상 모든 것 다 버리고 그분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내 부모, 내 형제, 내 배우자, 내 자녀, 내 친구,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먹이가 되어 그들을 영원히 살리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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