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제로서 제대로 살고 싶다(모니카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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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8-27 | 조회수1,826 | 추천수20 | 반대(0) 신고 |
2001, 8, 27 성녀 모니카 기념일 복음 묵상
마태오 23,13-22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일곱 차례 불행을 선언하시다)
불행하도다, 너희 율사와 바리사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를 잠가 버렸으니, 사실 너희가 들어가지 않을 뿐더러 들어가려는 사람들마저 들어가도록 가만두지 않는구나.
불행하도다, 너희 율사와 바리사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개종자 하나를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개종자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아들로 만들어 버리니.
불행하도다, 너희 눈먼 길잡이들아!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황금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구나.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황금이냐? 아니면 황금을 거룩하게 한 성전이냐? 그리고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구나.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아니면 제물을 거룩하는 제단이냐? 실상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제단과 그 위의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성전과 그 안에 거처하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묵상>
"지종아! 넌 참 행복하겠어. 든든한 빽(Back, 하느님)이 있으니까 말이야."
80년대 중반 대학 시절, 함께 운동을 하던 친구가 문득 내게 말을 건넸지요. 갈라진 조국과 쓰라린 민중의 고통을 모두 짊어진 양, 시국을 논하고 가열찬 투쟁을 결의하면서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유물론을 학습하면서도, 어찐 된 까닭인지 그럴수록 하느님이 더욱 가까이 느껴졌던 때였습니다. 하느님 때문에, 십자가의 예수님 때문에 나의 길에 더욱 확신을 가졌던, 나의 길을 거룩한 부르심의 길이라 믿으며 따르던 때였습니다.
함께 운동을 하던 벗들에게 '믿음'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믿는 이의 희망과 열정'을 어렴풋하게나마 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 돌아보면 삶의 기쁨이요 행복이었습니다.
"내가 나중에 종교를 가지게 된다면 천주교를 믿고 싶어."
5년 남짓한 직장 생활을 끝낼 즈음, 직장 동료들이 내게 말했습니다. 신학교를 가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는 동료를 떠나보내면서 던지는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내가 느끼고 받아들이기에는 말이지요. 그들은 나를, 자신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 따라 노동조합 활동을 주도적으로 했던 한 사람, 힘든 일 마다 하지 않았던 그리스도인,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교회청년운동에 열심했던 신앙인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부족한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과찬의 말이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기뻤는지... 신앙인으로서 가장 듣고 싶은 말, 그것은 '너를 보니, 네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나도 가지고 싶어' 라는 것이 아닐까요.
신학교 생활 7년, 사제 생활 2년... 오늘의 내 자신을 봅니다. 사제로 산다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더욱 진보했다는 것과 동일시될 수 없음을 압니다. 사제가 되었기에 오히려 더욱 겸손하게 그리고 더욱 철저하게,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버리며, 하느님 백성을 위해 자신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과연 이 앎에 얼마나 몸과 마음을 맞추고 있는지...
사제로 산다는 것,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어쩌면 두려운 일입니다. 두려운 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불행하도다, 너희 율사와 바리사이 위선자들아!"
예수님의 불행 선언을 들으면서, 내게 행복을 주었던 지나간 친구들을 생각합니다. 든든한 빽(물론 하느님이죠)이 있다고 부러워하던 대학 친구들, 천주교를 믿겠다고 말하던 직장 동료들을 생각합니다. 그 때를, 그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위선자가 아니라고 애써 자위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혹여 지금 이 시간의 삶 안에서 위선적인 것들이 있다면, 그 때의 순수했던 모습으로 말끔히 씻어내고픈 소박한 마음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삶은 그렇지 않으면서 입만 살아 애써 하느님을 찾아 온 이들을 밀치고 있지는 않은지, 주님이 아니라 나를 내세움으로써 오히려 하느님과 벗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지는 않은지... 이 모든 물음이 이제 갓 새내기를 벗어난 애송이 사제로서 살아가면서 더욱 가슴 깊이 파고 들기 때문입니다.
위선자를 향한 예수님의 불행 선언이 내게는 오히려 행복 선언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만큼 주님 보시기에 좋은 사제, 아름다운 신앙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오늘 잠시 머물렀던 옛 시간, 옛 친구들과 헤어져 오늘 이 자리로 돌아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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