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제는 다시 못 볼 사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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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1-08-29 | 조회수2,147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어린 시절 저는 부모님의 살아가시는 모습에서 잘 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자주 보아왔습니다.
퇴근시간이 불규칙했던 아버지의 저녁식사를 위해 기울이시던 어머니의 정성은 참으로 지극했습니다. 전기밥솥이 없던 시절, 아버지께서 드실 밥그릇은 언제나 따뜻한 아랫목에서 보온되고 있었고, 찌개 냄비는 약한 불 위에 얹혀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골목으로부터 들려오면 어머니는 민첩하게 일어나셨고, 아버지를 위한 근사한 저녁밥상이 즉시 마련되었습니다. 이런 광경은 지금도 제 마음 안에 흐뭇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준비한다는 것은 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경과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잘 준비하고 깨어 있어라"고 당부하십니다.
하느님 앞에 잘 준비하고 깨어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가장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다 잘 준비되고 정리된 죽음을 원하고, 이를 통해 보다 의연한 모습으로 주님의 날을 맞이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또 언제 그 날이 올지 모르니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경우 "내게는 아직 멀었으려니" 생각하며 우리의 마지막 날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살아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 날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뭔가 큰 계획을 세운다거나, 뭔가 돋보이는 업적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닌 듯 합니다.
그보다는 매일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련을 견디어 내는 일이며, 나란 존재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이며,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작은 의무들에 충실하려는 노력, 그것이 바로 가장 바람직한 준비일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서 서로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내 가족, 내 직장 동료들을 바라볼 때마다 "오늘이 지나면 이제는 다시 못 볼 사람"처럼 한번 대해 보십시오. 이런 노력을 통해 우리의 준비는 보다 의미를 더해갈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이승의 삶을 접고 또 다른 삶에로 옮겨가는 그 날. 아쉬움이나 불안, 괴로움이나 후회가 아닌 당당함과 차분함, 큰 기쁨으로 그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오늘 이 순간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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