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믿지 못할 사람(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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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미라 | 작성일2001-09-05 | 조회수1,801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제9처 세 번째 넘어지다.
세 번씩이나 넘어짐 : 완전히 실패한 자. 쓸모없는 사람. 믿지 못할 사람이 됨. 모든 이가 그가 힘이 있음을 믿지 못함. 힘없는 자로 여김받기에 충분하다.
예수 그리스도님 : 기진 맥진하시어 세번 째 넘어지셨다. 이제 더 이상 걸어갈 힘도, 혼자 일어날 힘도 남아있지 않으시다. 그래서 이제는 사형 집행인에게 자신의 몸을 다 내어 맡길 수밖에 없게 되시었다.
나 안에 완전히 실패한 자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그래도 괜찮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아직도 남아있다. 아직도 자신이 무엇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자만심이 살아있기에 그것을 철저히 없애기 위해서는 한 번 더 넘어져야만 한다. 완전히 실패한 자! 아무것도 아닌 자로 여김받도록 내동댕이쳐져야만 고개를 들고 있던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던 외적인 교만심’을 다 없애버릴 수가 있다.
세 번씩이나 넘어진 지금! 아버지의 뚯에 따를 수 있는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옷벗김을 당함으로 인해 창피당하는 것(10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11처), 죽는 것(12처),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묻히는 것(13, 14처) 등......
지금은 십자가를 짐으로 오는 고통의 절정 순간입니다. 나를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일말의 희망을 여지없이 무산시키는 순간입니다. 이제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의 몸에서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가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기도 어려워졌습니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이들에게 나를 송두리째 내어 맡길 수밖에................
아! 드디어 나는 하늘과 맞닿은, 하늘의 온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땅에 내 온 몸을 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로 위로 올라가려고만 하던 예전에 내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드디어..... 내가............... 십자가를 지고 땅에 온 몸을 대고 넘어져 계신 사랑하올 주님께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큰 기쁨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마태오 18, 3-4
’어린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맞지 않는 더러운 겉옷을 없애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동안 한꺼풀 한꺼풀 벗겨내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던 자존심, 체면 등. ’자신을 치장하는 모든 허례허식들을 없애버린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 그 어떤 사람의 눈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옷을 벗고 있어도, 아는 것이 없어도, 재주가 없어도, 가진 것이 없어도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린아이는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상태를 받아주고 자기를 사랑해주는 부모님의 품안에 머물러만 있으면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의 제9처까지 온 사람은 자신 안에 온갖 부족함, 더러움, 약점, 결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내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기까지 오는 동안 뼈져리게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 체면 : "나는 곧 나다" 라고 하시는 ’하느님의 자존심’은 ’투명한 상태의 당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시는 것’이지만, ’짐승의 상태가 되어 죽게 된 사람의 자존심’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 투명하게 만들어진 자신의 본 모습을 겹겹이 짐승의 옷으로 둘러싸고 감추어서 도저히 다른 이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만들어 ’불투명한 것’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본 모습을 겹겹이 짐승의 옷으로 둘러 쌓이게 한 사람은 혹시나 다른 이가 자신에 관하여 들추어 내기라도 할라치면 도저히 참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원수처럼 여기기가 일수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느님의 모상을 닮게 만들어졌기에 세상 모든 이는 똑같이 고귀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당연한데도 짐승의 옷을 덧입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알지 못하고 있기에 자신만이 남과 다른 어떤 특별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양 생각하여 자기 아닌 다른 그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길을 통해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자신의 얼굴에 겹겹이 둘러쳐졌던 너울을 없애고 고귀하고 깨끗한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면, 자기만 잘났거나 또한 더럽거나 하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불완전하여 죄를 짓고 살고 있으며, 다 똑같이 고귀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 이상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자신의 부족함을 부끄러워하거나, 다른 이들을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어 업신여기는 일은 없게 됩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너 어디 있느냐?" 아담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내가 따먹지 말라고 일러둔 나무 열매를 네가 따먹었구나!" "너는 아내의 말에 넘어가 따먹지 말라고 내가 일찍이 일러둔 나무 열매를 따먹었으니, 땅도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훍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야훼 하느님께서는 가죽옷을 만들어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주셨다...........
높아지려는 교만심으로 야훼 하느님의 뜻을 거슬려 죄를 지음으로 입었던 옷! 그 옷을 2천년 전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우리보다 앞 서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낮추시어 벗으시었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내쫓으실 때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주셨던 짐승의 옷! 나 스스로 야훼 하느님의 뜻을 거슬려 주인이신 그분에게 주인의 자리를 내어드리지 못하고 주인이 되려하므로 입었던 교만의 옷! 그 옷을 나 스스로 벗어 던질 수 있게 되므로써만 다시 에덴 동산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십자가의 길에서 세 번째 넘어지므로 ’짐승처럼 죽게 된 나의 온 몸을 감싸고 있던 짐승의 가죽 옷’을 벗어버릴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주님! 사랑하올 나의 주님! 당신을 믿고 따르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기 좋게 넘어져 계신 주님! 저도 이제 준비가 다 되었으니 당신 뜻대로 하소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신 당신께서 피조물인 그들 앞에서 옷을 벗으시었는데 하찮은 제가 무엇을 더 두려워하겠나이까? 저를 꽁꽁 감쌌던 제 교만의 옷을 훌훌 벗어버릴 수 있게 하여 주소서. 벌거숭이인 채로 엄마 품에서 마냥 행복한 어린아이처럼 작고 가벼워져 아버지의 나라로 번쩍 들어올려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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