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할아버지 신부님의 말씀(9/8) | |||
---|---|---|---|---|
이전글 | 임쓰신 가시관(37) | |||
다음글 | 주님을 만나러 어디로 갈까나(연중 22주 목) | |||
작성자노우진 | 작성일2001-09-07 | 조회수1,762 | 추천수17 | 반대(0) 신고 |
어떤 사람은 인간이 죽기위해서 태어난다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말이 끔직하고 조금은 비관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곱씹어 보면 또 다른 어떤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
우리 수도회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미국 신부님이 두분 계신다. 그 중에 한분은 오랫동안 수련장을 하신 나와 같은 ’노’씨 성을 가진 신부님이시다. 이름도 참 재미있다. 숭늉의 ’숭’자와 커피의 ’피’자를 따서 ’숭피’ 이시다. 미국인이면서 한국인다움을 간직하고자 하신 그분의 의도를 느낄 수 있는 이름이다.
그분은 가끔 우리의 말을 가지고 장난을 치실 때가 있다. 어느 형제의 행동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이해가 안 가요!"라고 말하면 그분은 여지없이 빙긋웃으며 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생의 의미는 이해하는데 있지 않고 사랑하는데 있죠. 그렇죠?"
가끔 그분의 말씀에 등골이 오싹해 오고 징채로 뒷통수를 맞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인생의 의미는 이해하는데 있지 않고 사랑하는데 있다는 그분의 말씀!
사랑한다는 것은 뭘까? 여러 가지 설명이 따를 수 있겠으나 결국 다른 이를 위해 나 자신을 주는 것, 나 자신을 죽여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서두에 꺼냈던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난다는 말은 단지 비관적인 의미만이 아닌 인간이 사랑을 위해 태어났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성모님께서 태어나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분은 결국 인류를 위한 구세주를 위해 이 땅에 계셨던 분이다. 그분께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죽이셨던 그런 분이셨다.
그분의 탄생을 기념하는 오늘 과연 나의 탄생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지 나의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봐야 겠다. 과연 나는 살고자 하는지 아니면 죽고자 하는지 말이다.
행복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