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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드디어 평화와 안정의 경계 안에..(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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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미라 쪽지 캡슐 작성일2001-09-18 조회수2,254 추천수4 반대(0) 신고

제12처 십자가 위에서 죽다.

 

 1984년 1월 연피정 중 영적 상담 때 "올 해는 12처에서 죽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3월 2일. 소임이 바뀌는 날! 다른 수녀원에 있는 아주머니 수녀님이 면회를 왔는데,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기를 원하나 비애없이 고통 당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애 중에 고통을 당하셨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말씀을 적어 코팅해서 가져다 주었는데, 그것을 받아들고서 저는 곧 ’이제부터 내가 당할 고통은 비애 중에 받는 고통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네, 주님! 저도 당신처럼 비애 중에 고통을 당하게 하여주십시오!’

 라고 말씀 드리고 새로 받은 소임 장소로 갔습니다.

 7년 동안을 ’엄마’로써 살아 이제는 참으로 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새로 받은 소임은 ’병원소임’이라 생소하기만 하여 ’이 소임 안에서 죽을 일이 생길 것인가?’ 생각하였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해 3월! 간염이 법정 전염병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간염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바짝 긴장하여 병원 사람들 먼저 검사를 하고, 한국교회 200주년을 기념하여 103위 순교자 시성을 위해 5월 4일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셨던 그 날에 저는 병원 접수실 일 인수 인계를 위해 하루 종일 분주하였습니다. TV에서 교황님께서 김포 공항에 도착하는 생중계를 보고 나서 간염 검사 발표를 하였는데, 접수실 사람과 제가 그날 저녁에 함께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이것이 죽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고 한 2개월 쯤 뒤에 ’이제 살아날 때가 되었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저를 너무나도 아끼고 챙겨주던 이가 느닷없이 "자기 죽으려면 아직 멀었어!" 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죽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병이 나으면 부활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말은 잠자고 있는 제 머리를 치는 망치와도 같이 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즉시 "나 벌써 죽었는데?" 하고 반문하여 보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아 곧 바로 성당으로 올라가 12처를 바라보니 ’정말 내가 예수님처럼 죽으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에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있음은 물론이고, 생각, 감정조차도 없어지는 일........

그래야만 죽는 것인데...... 저는 너무나도 쉽게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죽는 다는 것은 애착심, 사랑하는 감정까지도 없애야 하는데 바로 옆에서 나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사람도 있고.......  멀리 있는 사람들이야 걱정을 안했지만 가장 가까이 병원 주방에 있으면서 챙겨주던 사람 때문에 큰 걱정이었는데 예상외의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다른 곳으로 소임이 바뀌었다고..........  "간염은 잘 먹어야 하는데...... 잘 챙겨주어야 하는데...... 어쩌지?" 하며 울먹이기까지 하며 그 동료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아! 이제 홀가분하게 죽는 작업을 해야겠구나!’........

 병원에서 퇴원하여 병자라고해서 새로운 소임을 받았는데, 제 일보다도 훨씬 더 힘든 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건 아마도 제게 그런 일을 시키신 분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분께서 제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제가 온전히 죽어 당신과 함께 부활하기를 원하시는 분께서 그렇게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죽는 것을 돕게 위해 제게 주어졌던 일과는 이렇습니다.

새벽에 30분 먼저 일어나 버스를 타고 가서 미사에 참례하고, 하루 세 끼를 다른 장소에서 왔다 갔다 하며 식사를 해야 하고, 하루 종일 재봉틀에 앉아 일을 해야 하고, 점심 시간도 30분 줄여 올갠 연습을 하고, 일을 끝내는 시간도 남보다 30분 더해야하는 것이었지요. 처음부터 그렇게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하나 하나 지시를 내린 것이기에 그분은 아마도 제가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때 제게는 그 지시를 하나도 어김없이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에 일분 일초도 어기지 않고 이행하려 최선을 다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부당한 처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지만, 노력한 끝에 두 달 후에는 주어진 모든 일을 기쁘게 아주 기쁘게 마음 속까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그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제 모든 감정에서 온전히 죽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던 말씀은 "준주성범" 145쪽 ’평화를 얻는데 필요한 네가지 주의’였습니다.    

 

         "아들아, 이제 평화와 참된 자유의 길을 가르쳐 주겠다.

        네 뜻을 따르는 것보다, 남의 뜻 받들기를 힘써라.

        항상 많이 가지는 것보다 적게 가지기를 원하라.

        항상 낮은 자리를 취하고,

        모든 이에게 복종하기를 도모하라.

        항상 하느님의 성의가 완전히 네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라.

        이런 사람은 평화와 안전의 경계 안에 들어가리라."

        (첨가) = "죽게 되리라." = "영원히 살리라."

 

 7월 29일. "네가 오로지 원할 것은 사나 죽으나 하느님께서 항상 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할 것뿐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모든 이의 수하에 겸손되이 너를 낮추어라. 누가 이런 말을 하고, 누가 이런 것을 명했는가 캐지 말아라. 누가 네게 어떠한 것을 하라고 하였거나 하기를 바라는 듯 하거든 그가 어른이거나 아랫사람이거나 동무거나 상관할 것 없이 다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성의껏 그 뜻을 채우려고만 많이 힘써라."       

       

 열심히 노력한 결과 주어지는 모든 일들을 마음으로부터 기쁘게 받아들여 날아갈 듯 쉽게 하게 되었을 때, 마음과는 달리 육신은 너무 과로하였기에 검사 결과가 나빠져서 9월에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원한 후로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남은 애착심을 버리는 작업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우습게도 십자가를 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때까지 만난 사람에 대한 것과 그 안에서 주어진 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애착심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겠다고 온 길인데 어처구니 없게도 거기에서도 또 많은 것을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저를 사랑해 주었던 동료들......

 십자가의 길 내내 저를 도와주었던 고해사제...........

 제일 마지막으로 제게 주어졌던 소임.......................

 

 그러한 것들에 대한 애착심을 끊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 모든 애착심을 하나라도 끊지 못한다면 어떻게 온전히 죽을 수 있겠습니까?..........

 

 그 일을 좀 더 잘하기 위해 먼저 사진 한 장에 까지도 가졌던 애착심을 끊으려고 집으로 가서 그 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했던 편지들...... 어렸을 때의 사진들........  그 때 쓰고 있던 일기장..... 고해사제의 사진 한 장까지..........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제일 마지막까지 저를 괴롭혔던 "소임에 대한 애착"을 끊지 못하는 저를 보고 오라버니는

 "결실의 계절, 산들이 아름답게 물들어 가고 있는 이 때에 오랜만에 보내 준 네 편지 고맙고 기쁘게 받아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병상에서 지내느라고 고생한 네 글을 읽고 마음이 무척 아팠단다. 그래고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잘 견디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주님의 크신 은총과 사랑에 감사드리며 어서 빨리 쾌차하여 다시 주님의 포도원에서 보람된 나날을 보낼 날이 오기를 주님께 기도드린다....

 한가지 잔소리 비슷한 말을 한다면 물론 집에 할 일이 많이 있어서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왕지사 병상에 있는 처지에서 그런 것을 자꾸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임을 알고, 주님께서 다시 건강을 되돌려주신 후에 또 못다한 일을 하면 되는 것이나, 지금은 너무 잡다한 일에 신경을 쓰지 말고, 무엇보다도 먼저 건강 회복에만 전념해 주기 바란다.

 지나간 시간이나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느라고 지금 당장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못할 수가 있기 때문이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처해 있는 처지에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를 따르는 것이 중요한 일이며,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또 지난날에 너무 매달려서 자꾸 되뇌는 것도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니 지금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도록 하기 바란다.

 그러고 보니 또 직업의식이 발동한 모양이지? 미안!.... 라틴어 격언에 이런 말이 있지.

 ’세상에 필요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다.’

즉, 내가 아니면 그 일을 아무도 못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이런 생각은 교만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우쳐주는 말이겠지. 공연히 할 수도 없는 일을 가지고 신경쓰지 말고, 네 자신을 반성하고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의 의미를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주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건강회복에 더욱 힘쓰기를 바라며, 혹시 내가 뭐라도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서슴지 말고 일려주기 바란다. 내 힘껏 도와 줄테니 말이다."

 

 라고 조언을 해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지막 남은 일에 대한 애착심’을 끊고 온전히 죽을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일에 대한 애착심’’저의 껍질 속에 마지막 남아있던 힘’이었습니다.

  오라버니의 말씀과 함께 성녀 소화 데레사의 "마지막 남긴 말씀"이란 소책자는 제가 제12처에서 죽는데 참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미 겉껍질은 다 썩어 없어졌고, 이제 씨눈을 감싸고 있던 속껍질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그 순간 다 썩어버렸습니다.

 비로서 저는 세상의 모든 것에서 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이제 제게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서 끈질기고 악착같이 저를 내신 아버지께로부터 떼어놓으려했던

 세상과의 싸움을 끝내고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ㄷ) 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님처럼

 저도 당당히 "내가 세상을 이겼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 속에 들어가 썩은 속껍질을 벗어버리고 씨눈을 틔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처럼 "부활"하는 것이지요.......

 

 이제는 모든 고통이 다 사라지고,

 한없는 고요와 평화 속에 머물며 다만 기다리면 됩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쁨과 영광의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이러한 마음의 깊은 평화를 맛 본 순간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깊은 평화는 아무도, 이 세상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도, 빼앗아 갈 수도 없습니다...........

 

 저는 그러한 "고요와 깊은 평화"를 1984년 소화 데레사 성녀 축일인 10월 1일부터

 저의 또 한 분의 스승이셨던 성 십자가의 요한 성인 축일인 12월 14일까지 75일 동안 너무나도 풍족하게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 부족하고 못난 저를 당신의 이 거룩하고도 맛 난 길로 이끌어 주신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 제가 그 길로 나아가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성 십자의 요한 성인과 소화 데레사 성녀와 저의 고해사제와 오라버니께도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외 다른 성인 성녀들과 저를 사랑해 주었던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어줍잖은 제 글을 끝까지 읽어오신 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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